[인권교육, 살짝쿵] 지원이 ‘독’이 될 때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 지원은 어떻게 가능한가

 

지원 대상인 장애인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으로,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는 태도가 부족합니다. 장애인의 증상이나 문제에만 처방을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의견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최근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에서 인권교육을 요청해 오셨습니다. 오랫동안 시설에서 생활해 온 발달장애를 가진 분들을 주로 지원하는 현장이다 보니, 활동지원사는 물론 지원가(자립생활 코디네이터)들이 장애인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의견을 확인하는 일을 생략하는 일이 종종 일어날뿐더러 특정 행동을 ‘통제’하는 함정에 자주 빠지게 된다는 것인데요. 이는 장애인 지원 현장뿐 아니라 청소년이나 인지증(치매) 노인, 이주민처럼 사회가 미성숙하다고 간주하는 소수자들을 지원하거나 돌보는 공간이라면 어디에서나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원은 하되, 지원받는 이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점검해보면 좋을까요?

‘손 아래 손’에 담긴 의미

지난해 말,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이 개최한 <2020 바깥대학원 : 코로나 재난시대를 통과하며 – 돌봄, 접촉, 페미니즘 사유> 연속강좌에서 이지은 님을 통해 40년간 작업치료사로 일해온 티파 스노우(Teepa Snow)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스노우는 ‘손 아래의 손(hand-under-hand)’이라 부르는 방식으로 의사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인지증 노인들의 상태를 감각하고 상대의 ‘협조’를 이끌어낸다는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스노우는 왜 상대의 손 아래 자기의 손을 놓는 방식으로 손을 맞잡는 법을 택한 것일까요? 맞닿은 손바닥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며, 지원을 받는 노인으로 하여금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을 갖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돌보는 사람도 상대가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지요. 돌봄을 받는 이의 존엄과 주체성을 존중하면서도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접촉 방식. 손을 맞잡는 이 작고 일상적인 행동 속에 담긴 사려 깊음이 큰 울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강좌가 끝나고 스노우에 대해 좀더 찾아보니 자신의 작업을 소개한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었고 테드(TED) 강연에도 초대받은 적이 있었더군요.

티파 스노우의 치료작업

스노우의 이야기가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이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교육에서 소개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이 사려 깊은 상호작용 속에서 꽃피는 것임을 안내한 뒤, 참여자들에게 몇 가지 토론과제를 제시해 보았는데요. 하나는 장애인만이 경험하는 차별을 찾아보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자립생활을 지원할 때 놓치면 안될 십계명을 정리해보는 것이었습니다. 토론 결과를 보니 동의 없는 지원, 설명 없는 지원, 기다림이 생략된 지원과 같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참여자들 스스로 찾아내 주었으니 더할나위없이 반갑고 감사한 일입니다. ‘자립생활은 누가 하는 것인가’라고 질문하면 당연히 장애인이라고 답하겠지만, 막상 장애인이 자립생활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지원, 독이 되는 지원은 얼마나 많은가요? 조바심과 대리 결정의 유혹과 싸우면서 사려 깊은 질문, 비언어적 의사 표현에 대한 경청, 장애인의 속도에 맞추기와 같은 변화를 선택할 수 있을 때, 장애인 자립생활은 좀더 자립생활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까요?

장애인 지원 토론

 

지원받는 이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모둠활동이 끝난 뒤, 지원받는 이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 지원 활동이 되기 위해 기억해야 할 것들을 안내했습니다.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장애인을 ‘장애’인(人)으로만 바라보지 않기. 장애인을 만날 때 비장애인들은 그 사람을 ‘장애’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애인으로만 대한다는 것은 상대가 가진 어떤 손상이나 특정 증상, 행동을 그 사람의 인격과 정체성의 전부인 양 판단한다는 것 아닐까요? 장애인을 ‘장애’인으로만 보지 않고 존엄성과 고유한 세계를 지닌 사람으로 바라볼 때 많은 부분이 달라질 거 같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돌봄/지원’의 통합적인 역할을 인식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다이엘 엥스터의 <돌봄, 정의의 심장>에는 아래와 같이 돌봄의 의미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돌봄은 직접적으로 긴요한 생물학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타인을 돕거나,

타고난 역량을 발달 혹은 유지하도록 돕거나,

불필요한 고통이나 고충을 경감하도록 타인을 배려하고 응답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돕는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돌봄 또는 지원은 의사와 교육자, 종교인, 상담사들이 수행하고 있는 작업들을 모두 통합한, 아주 귀한 활동입니다. 이 활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높아지는 것도 필수적이지만, 이 활동을 수행하는 이들 역시 상대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곁’에 서는 법을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야 합니다. 내가 일상에서 주변의 가족, 지인, 동료들에게 행하는 돌봄을 수행할 때도 유념해야 할 등불이기도 합니다.

 

*글쓴이: 개굴_경내(상임활동가)

*참고자료: “[좌담] 언택트시대, ‘접촉’의 필수성과 취약성” (2020) ,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2020 바깥대학원 : 코로나 재난시대를 통과하며 – 돌봄, 접촉, 페미니즘 사유> 4강 강의자료 (2020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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