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다양한 청소년의 삶과 접속하는 ‘우리는 어디로’
우리가 아는 그 청소년은 없다.

들에서 진행하는 인권교육 방법론에 대한 교육에 매번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방법론은 기법이 아니라 철학이다.”

덧붙여, “교육가가 기획한 무대지만, 극본을 벗어난 연기여야 제맛이다.”라며 참여형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방법론 체험을 마친 뒤에는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변형해볼 수 있을까요?” 질문을 던지며 대상, 목표, 교육환경에 따라 유동적으로 프로그램을 변형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나누곤 합니다. 저도 상임 활동을 시작하고 몇 차례 <인권교육 방법론 체험> 교육을 가게 되면서 이 말들을 해왔지만 설명할 때마다 그 의미를 잘 전달하기가 항상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간결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깊은 고민과 의미를 담고 있어서일까요? 문장을 읽는 동안엔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막상 교육에 적용해보려고 하면 ‘그래서 방법론이 철학이 된다는 게 뭔데? 어떤 고민과 적용이 필요한 거지?’ 하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오늘은 인권교육 방법론의 철학을 설명하는 이 문장들을 새삼 떠올리게 되었던 교육을 소개하려 합니다.

 

우리가 아는 그 청소년은 없다.

인권교육에서 청소년 인권을 다룰 때면 “근데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여러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요즘 청소년’의 상을 들어보면 ‘미래의 주역’, ‘보호의 대상’, ‘무서운 10대’ 등의 이미지들이 주로 등장합니다. 존재에 대한 성실한 이해를 포기하는 것이 왜 차별로 이어지는지, 우리는 왜 존재의 복합성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나눈 뒤에도 여전히 청소년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이야기만 맴돌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참여자에 따라 청소년 인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청소년이란 존재를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 교육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거쳐 “우리가 아는 그 청소년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청소년인권감수성을 키우는 내용을 준비했습니다. 참여자들이 생각하는 ‘요즘 청소년’은 어떤 이미지인지 들은 뒤 편견은 깨고, ‘현상’ 뒤에 숨은 ‘맥락’을 발견하고, 청소년이란 존재를 새롭게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청소년’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대상이 ‘인문계 학교에 다니는 비장애-비성소수자 청소년’에만 한정될 경우, 다양한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삶의 문제에 주목하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생생토크, 사람책 등 당사자를 초청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교육에서 참여자들이 실제로 자신이 만나본 적 없다고 생각되는 이들의 삶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 의견을 모아 이날에는 ‘우리는 어디로’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기로 했습니다.

 

다양한 청소년의 삶과 접속하는 ‘우리는 어디로’

‘우리는 어디로’는 어떤 존재의 복합성을 드러내기 위해 각 존재를 구성하는 정체성을 다르게 부여하고 같은 상황에서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보는 프로그램입니다. 질문을 제시하고, 동의 여부에 따라 자리를 이동하면서 최종적으로 처음의 위치와 얼마나 이동했는지, 다른 이들과는 어떤 간격을 두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게 됩니다. (스브스뉴스에서 ‘소셜실험…청년들에게 당신은 보통사람인지를 물었다’랴는 제목으로 진행했던 방식과 유사합니다. 실제 진행되는 모습이 글로는 상상이 어렵다면 영상을 참고해보세요.)

프로그램 진행안내 피피티의 역할카드 내용프로그램 진행안내 피피티의 역할카드 내용

 

이날 교육에서는 4개의 모둠으로 나누어 탈가정 청소년, 청소년 노동자, 성소수자 청소년, 공부에 관심이 없는 인문계 청소년의 삶과 접속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전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참여자분들이 우리가 교육과정을 기획할 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한 청소년과의 접점이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경험하는 삶의 문제들을 참여자들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디로’를 잘 진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기획안을 변형하여 발표자들이 캐릭터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을 추가로 마련했습니다. 역할카드를 조별로 나눠주고 해당 인물이 주로 경험하게 될 어려움은 무엇일지, 어떤 말들을 주로 듣게 될지를 떠올린 뒤,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이 맡은 역할에 생동감을 부여하여 자기소개를 부탁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 참여자들이 좀 더 몰입해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장치를 굳이 따로 마련한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이동하는 것 자체에만 의미를 두기보다는 이동한 뒤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어떤 이유로 이동했는지를 물어 선택의 이유를 나누는 것이 중요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과정에서 각 정체성별로 경험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 구성해야 합니다. 이 질문 리스트를 보면서 ‘아! 이건 누구를 염두에 둔 질문이겠구나!’ 싶은 느낌이 드시나요?

교육에서 사용한 질문지 리스트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나를 제일 먼저 의심할 것이다.>, <길거리에 친구들과 모여있으면 주변에서 안 좋게 볼 것이다.>같은 항목은 탈가정 청소년을 둘러싼 부정적 인식을 짚어보기 위한 문장입니다. 반면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청소년이기에 공통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문장도 있습니다. <나의 정치에 대한 의견은 공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병원에 가면 사람들은 나보다 같이 간 보호자에게 말을 걸 것이다.>가 그러합니다. 이런 식으로 각각의 의도를 가진 질문들을 배치하면 각 정체성을 맡은 참여자들이 어떻게 응답할지 예상하고 다른 점과 같은 점을 발견할 수 있을 인터뷰 질문을 떠올리기에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날 교육에서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참여자들이 모두 똑같이 움직이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질문을 잘못 준비했던 것일까? 본격 시작 전에 새롭게 시도해본 빠져들기 시간이 부족했나? 낭패라고 생각되어 당황한 마음을 진정하고, 왜 그렇게 이동했는지를 물어보니 새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졌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인터뷰는 성소수자 청소년의 고민을 드러내기 위해 준비한 “애인이 생기면 주변에 소개하기가 망설여질 것이다.”에 모두가 이동했을 때였는데요.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 청소년, 인문계 고3 청소년, 청소년 노동자는 왜 모두 그렇다고 답했을까요? 얘기를 들어보니 각각의 고민과 이유가 드러났습니다. 아래 문장들의 주인공은 누구일지 같이 상상해보며 같이 따라가 볼까요?

 

 

“저는 상관없는데, 제 애인이 저랑 사귄다고 하면 안 좋은 말을 들을 것 같아요.”

 

“연애할 시간이 있어?”

 

“위험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괜히 저를 걱정하는 눈으로 볼 것 같아요.”

 

“애인이 누군지를 알려줄 수가 없으니까요.”

 

첫 번째 말의 주인공, 청소년 노동자를 맡은 조에서는 자신은 망설여지지 않지만, 상대는 망설이게 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애인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연애 사실을 숨겨야 하는 이의 마음에서 씁쓸함이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청소년 노동자를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비교적 쉽게 예측이 가능한 두 번째 말의 주인공은 인문계 고3인 청소년이었습니다. 비교적 제도권 내에 있는 청소년도 자유롭게 관계를 형성하지 못할 수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답변이었는데요. 모의고사에서 평균 5등급을 받았다는 역할카드의 특성이 합쳐지면서 “공부도 못하는 게 무슨 연애”라는 말을 듣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세 번째 문장은 탈가정 청소년 팀의 말이었는데요. 탈가정한 여성청소년을 대할 때 사회가 성적으로 취약한,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쉬우므로 이들의 연애를 통제하려고 할 것 같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마지막 문장의 주인공은 성소수자 청소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망했다!’ 생각했지만, 이처럼 참여자들이 전해준 각각의 이유를 다 듣고 나니 청소년의 연애라는 하나의 주제로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여러 이유로 청소년의 연애는 걱정의 대상이 되기도,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통해 청소년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을 다시금 짚어보고 여러 정체성 간의 연결성을 찾아볼 수도 있었습니다. 글의 시작에서 얘기했던 인권교육 방법론의 철학, 교육가가 기획한 무대지만, 극본을 벗어난 연기여야 제맛이다.”를 톡톡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날의 교육 경험처럼 참여자와 공간에 따라 방법론에 여러 변화를 만들어보는 것, 그리고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참여자와 충분히 소통하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게 인권교육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 글쓴이:  연잎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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