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어디부터가 학대냐고 묻는 당신에게
해도 되는 체벌? 해서는 안 되는 학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징계권(민법 제915조)을 삭제하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했다. 기존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가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 부모의 체벌을 ‘훈육’, ‘사랑의 매’로 정당화 하는 근거가 되어 왔다. 때문에 아동학대와 관련한 사건에서 종종 “… 상처는 심하지 않으며 학대 때문인지 훈육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천안 아동학대사건 112신고내용 중)”, “밥 안 먹어 때렸지만, 췌장 끊어질 정도는 아니다.(생후 16개월 아동학대사건 변호내용 중)”라는 말이 사회에서 통용되곤 한다. 여전히 어린이, 청소년들에 대한 폭력은 교육차원으로 이해되고 용인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폭력상황을 목격하게 되더라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테니까’하며 못 본 체하거나 ‘그 집의 방식이니까’하면서 묵인한다. 우리사회는 어린이를 죽음으로 몰아넣거나 죽일 듯이 패는 아동학대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고 가르침을 위한 ‘적정한 정도’의 체벌은 괜찮다고 여겨 왔다. 징계권 삭제는 이러한 우리사회의 인식과 태도의 문제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해도 되는 체벌? 해서는 안 되는 학대?

아동학대 기사의 댓글이나 여러 웹사이트를 들여다보면 ‘이 정도를 학대라고 할 수 있나요?’ 하는 류의 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매를 들었던 글쓴이라면 자신이 왜 매를 들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목적이었는지를 강조한다. 예컨대 ‘맞을 짓을 해서 때렸다.’는 논리와 교정, 교육을 위해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리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목이 ‘그렇게 심하게 때리지는 않았다.’는 행위의 정도이다. 아이가 욕을 해서 회초리로 종아리 100대를 때렸다. 이것은 학대인가? 너무 많이 때린 것 같은가? 그래서 10대를 때렸다. 그렇다면 이것은 가능한 수준의 체벌인가?

청소년 참여자가 많은 한 교육에서 ‘청소년과 가정폭력(아동학대)’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요청이 왔다. 구체적으로는 ▸부모가 청소년(자녀)에게 행하는 차별에 어떤 식으로 대처 혹은 없앨 수 있을까? ▸가정폭력은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토론해 보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가정을 비롯해 일상에서 어린이,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문제에 집중해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해도 되는 체벌과 해서는 안되는 학대라는 이분법이 작동하고 있고, 청소년들 또한 이러한 인식 틀 안에 살고 있기에 바로 이 지점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무엇이 폭력일까?

교육을 준비하면서 검색한 한 동영상(닷페이스 ‘왜 우린 어릴 때 당연하게 맞고 자랐을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폭력감수성을 살피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활용해 보았다. 우선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접했을 법한 다양한 벌의 형태를 적은 낱말카드를 준비했다. 이를 참여자에게 제시한 후 이것은 ‘가능한 수준의 체벌이다.’ 혹은 ‘이 정도는 학대다’로 분류해 볼 것을 요청했다. 내용이 비어있는 카드도 2개 정도 마련하여 참여자들이 받았거나 많이 목격한 벌로 채워달라고 주문했다. 모둠별로 벌 내용이 적힌 카드를 나눠준 후 가능한 수준의 체벌과 해서는 안되는 학대로 나누어 전지에 배치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도 덧붙여 줄 것을 요청했다. 모둠별 토론을 진행한 후 어떤 의견들을 나누었는지 살펴보았다.

체벌과 학대

한 모둠에서는 빈 카드에 많이 받았던 벌로 ‘깜지’를 추가했다. 그리고 이를 포함하여 꿀밤 때리기, 한 시간 동안 무릎꿇고 손들기 있기는 해도 되는 간접체벌로, 손(가락)으로 머리를 수차례 밀기, 앉았다 일어났다 100번 등은 직접적 체벌로 분류했다. 직/간접을 가르는 기준은 신체접촉 여부였고 이런 행위는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가능한 벌이라고 했다. 신체적, 정신적 학대가 벌을 받는 사람에게 신체적 고통은 물론 모욕감과 수치심을 야기하는데 반해 체벌은 당사자가 잘못을 깨우칠 수 있을 정도의 벌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을 압수하거나 저녁을 굶기는 일, 머리를 한웅큼 자르기, 방과 후 외출 금지는 체벌과 학대 사이로 배치했다.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고통이나 충격을 주지는 않지만 체벌로 용인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한 모둠에서는 제시된 모든 행위를 학대로 분류하고 있었다. 신체적 고통이 얼마나 크냐에 관계없이 당사자가 받을 모욕과 충격을 고려할 때 제시된 어떤 행위도 타인을 향해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시된 내용이 모두 명백한 학대이기 때문에 교육적인 벌로 ‘생각의자’를 떠올렸다고 했다. 생각의자에 앉아서 찬찬히 자기 행동을 돌아본다면 문제도 깨달을 수 있고 크게 고통이나 부끄러움도 갖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생각의자에 한 시간 이상 있을 것을 요구받는다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이 던져지자 그 경우 신체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학대일 것 같다고 의견을 바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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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수준의 체벌은 없다

논의를 통해 우리는 다시금 질문해 보았다. 체벌과 학대는 정말 다르고 구분이 가능한 것일까? 밥을 안 먹어서, 떼써서, 언행이 바르지 않아서, 시끄럽게 뛰어다녀서, 양치질을 안해서, 거짓말을 해서, 게임을 많이 해서와 같은 이유들로 이를 교정하기 위해 가해지는 행위는 괜찮은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지 않는 정도의 폭력은 해도 되는 것일까? 참여자들 중에는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한 일에 대해서는 익숙한 상황이라 폭력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답하기도 하고, 꿀밤같은 거까지 폭력이라고 해야 하냐는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로의 경험 속에서 그러한 행위가 어떻게 경험되었는지를 나누면서 행위의 원인과 그 정도가 폭력을 정당화 할 수는 없는 것 같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면서 어린이, 청소년에게는 이렇게 해도 된다고 여겨 온 사회적 인식과 용인이 폭력을 교육으로 둔갑시키고 유지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가정폭력이 여성과 어린이를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온 가부장적 질서에서 비롯되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폭력의 종류나 크기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 어떤 조건들이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지 살펴야 하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어린이, 청소년이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동등한 인간이며 권리의 주체라는 인식이 전제될 때 어린이, 청소년을 향한 폭력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 글쓴이: 이묘랑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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