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짓는 사람+들] 무너져도 괜찮아, 구를 수 있으니까
– 활동회원 난다 님의 쉬다 온 이야기

무너져도 괜찮아, 구를 수 있으니까

 

올해 상반기에 활동을 쉬었다. 원래는 일명 ‘안식년’을 가지며, 일 년을 꽉 채워서 쉬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반년 정도만 쉬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활동에 복귀한 상태이다. 원래 이 글은 복귀 전에 쓰기로 했는데! 오랜만에 쉬는 이야기와 근황을 쓰려니 이상하게 손에 잘 안 잡혔다. (실은 비슷한 글을 몇 번 요청받고 이미 써서 그럴지도 모르겠다ㅋㅋ… 마감을 못 지켜서 죄송해요 흑흑)

무튼 이건 나의 쉬다 온 이야기이다. 들 활동회원으로는 2019년까지 진행했던 몽실팀 활동을 마무리하고 2월부터 슬슬 쉬기 시작했지만, 이런 저런 일들을 정리하면서 본격적으로 휴가를 맞은 건 3월부터이다. 그렇게 3월과 8월에는 제주도에서 지냈고 그 사이 시간에는 요가를 배웠다.

3월의 제주도는 생각보다 추웠다. 그래도 남쪽이니까, 봄이니까 하며 챙겨온 옷들은 그곳의 변화무쌍한 날씨와 바람에 제 역할을 거의 못했다. 또 휴가 초반에는 ‘쉬는 날들’에 몸과 마음이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잠을 그렇게 자도 피곤하고, 잘 안 꾸던 패턴의 꿈을 꾸기도 하고, 여기저기 몸이 아픈 것 같고, 어쩐지 소화도 잘 안 되곤 했다.

무엇이든 새로운 걸 배울 때는 연습과 적응이 필요한 법이다. 처음 물속에 들어가 수영을 배울 때도,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도, 몸에 힘을 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쉼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 힘 빼기가 참 쉽지 않다. 이제 쉬니까, 요가/운동도 꾸준히 하니까, 여유도 생기고 몸도 좀 튼튼해겠지! 하면서 나도 모르게 또 열심히 하고, 힘을 내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뭉친 몸과 마음이 단번에 풀리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쉬는 동안에 몸도 마음도 최대한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쉬면서도 자꾸 무언가를 해내려 하고, 빨리 비우고 서둘러 채우려고 한 것이다. 이런 나의 오래된 습관을 새삼스레 발견하면서 그제서야 조금은 느긋한 마음이 되었다. 물론 ‘지금 내가 이렇구나, 힘을 좀 빼야지’ 한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제주도 바닷가의 바위 위에 서서 양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만끽하는 난다의 모습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여름에 다시 제주도를 찾은 건, 봄은 겪어봤으니 다른 계절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내가 머물렀던 삼달다방(숙소) 근처에서 열리는 <춤추는섬3: 표현하는 몸>이라는 워크숍에 참여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춤추는 섬>은 ‘바리나모’라는 댄스 아티스트 듀오가 제주도에서 진행하는 소매틱 댄스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몸을 움직이는 일은 영 자신 없지만 잘 몰라도 괜찮다는 이야기에 덥썩 신청해버렸다. 그리고 이번 여름, 2주 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나의 몸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몸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경험했고, 매일매일 다른 에너지를 주고받았고, 혼란과 안정감이 오가며 몸에 흐르는 시간이었다.

최근 나의 상태에 대해, “내가 그동안 두 팔을 계속 뻗고 있었고 그러다가 팔이 아파서 잠시 내려놓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쉼을 갖기로 한 이유-지침, 소진감 등-와도 연결되는 상태이다.) 이번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스스로의 상태도 좀 더 몸으로 경험해본 것 같다. 나는 새로운 것들과의 관계 맺음에 열려있는 편이라 생각했고 또 나도 그런 상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다 보니 다른 감각과 그로 인한 발견이 떠올랐다. 몸을 웅크렸다 펼치는 동작을 반복할 때였는데, 웅크리는 느낌이 훨씬 편안하고 해방감을 주었던 것이다. 또 어떤 순간에는 다른 몸들과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연결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같이 올라왔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면서 내 안에 다양한 결이 있고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걸 느꼈다. 나는 경계심도 크고 동시에 그 경계심에 대한 저항도 있구나. 지금 내가 이렇구나.

제주도에서 지낸 덕분에 자연과의 연결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돌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에서는 일부러 돌담 사이 사이에 구멍이 나게끔 쌓는다고 했다. 그 틈새로 바람이 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핏 허술해 보이는데 오히려 그 허술함 덕분에 와르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강한 바람이 불어서 조금씩 흔들리고 굴러떨어지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은 허술함에서 나온다는 게 재미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틈 없이 바쁘게 산다. 또 살면서 마음 놓고 푹 쉬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살면서 이런 시간이 거의 처음이었다. 하루는 멍 때리고, 하루는 온종일 파도만 바라보고, 하루는 아침 바다 수영을 하고, 하루는 숲길을 걷고, 달빛을 받으며 산책을 하고, 같은 시기에 숙소에 머무는 이들과 같이 밥을 해 먹으며 조금씩 정들고. 그렇게 머무르는 시간은 그래서 더 소중했다.

정다운 사람들, 사박사박 흙길을 밟는 느낌, 시시때때로 바뀌던 하늘의 풍경, 아침 햇살을 맞으며 마시던 커피 한 잔, 계절의 흐름을 알려주는 듯하던 풀벌레 소리, 한결같이 흔들리는 파도, 바람, 허술함과 단단함이 공존하는 까만 돌들. 분명 다 내가 지나온 것들인데 돌아보니 꿈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이번 쉼의 경험이 지금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흐르고 있고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해진다.

나에게 이번 휴가는 과거도 돌아보고, 현재에도 머물러보고, 미래도 조금씩 그려보는 시간이었다. 나를 좀 더 가깝게 느껴보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모습을 새롭게 만나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목표가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경험할 수 있었던 날들이기도 했다.

아마 앞으로도 지치는 일도 있을 테고 바쁜 날도 있을 것이다. 또다시 막막하고 힘든 일에 부딪히면 허술함과 단단함이 공존하는 제주도의 까만 돌을 떠올릴 것 같다. 만약 우리가 돌이라면, 어느날 비바람이 불면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쌓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상태로 구를 수도 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이제 비슷한 구멍과 흉터를 가진 돌들과 부대끼며, 흔들리는 파도를 마주하며, 허술하면서도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다.

 

*작성: 난다(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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