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참여자들 사이의 생생한 토론을 돕는 문장들
OX/스펙트럼 토론의 문장 다시보기

 

*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가 주최하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교육활동가 양성 프로젝트 [경계 넘기]’에서 상임활동가 루트가 진행한 인권교육 방법론 교육에 다녀왔습니다. 들에서 상임 활동을 시작하곤 인권교육을 들을기회가 적어져 아쉽던 차에 다른 이의 말로 인권교육의 철학을 다시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어 좋았습니다. 그중 제 마음을 살짝쿵 흔든 순간을 소개하려 합니다.

 

인권교육에서 참여자들의 생각을 점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참여자들 사이의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그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찾아보는 OX 토론이나 스펙트럼 토론이 그러합니다. OX/스펙트럼 토론을 활용할 때 교육의 목표에 잘 도달하기 위해선 어떤 것들을 고려하면 좋을까요?

 

 OX/스펙트럼 토론을 활용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토론을 진행하다보면 <찬성 vs 반대> 구도나 정답 찾기로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인권교육에서 OX/스펙트럼 토론을 활용할 때는 어떤 의견이 정답인지 짚는 것보다 참여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다른 참여자들과의 차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살피는 게 중요합니다. 그 과정이 참여자들로 하여금 구조를 파악하고 관점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의 삶과 밀접한 문제들이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주제를 담은 문장을 가져가는 게 좋습니다. 평소에 헤아리지 못했던 부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발견된 내용을 꼼꼼히 다루기 위해서는 다루고자 하는 쟁점을 명확히 하고, 참여자들의 예상되는 의견을 떠올리며 어떤 이야기를 뒤에 나눌지 미리 떠올려 가야 합니다.

ox, 스펙트럼 토론에서 고려할 점을 정리한 피피티 슬라이드 화면

 

청소년 인권교육에서 이 문장을 가져간다면 어떨까요?

학생도 사회의 구성원이다

앞의 고려할 점을 바탕으로 살펴본다면 참여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이고, 교육의 주제와도 어울립니다. 토론을 진행하면서 청소년참정권 등의 쟁점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에 x라고 답할 참여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학생도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말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고, 딱히 이견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만약 이견이 떠오른다 하더라도 인권교육에서 x를 말하기는 쉽지 않은 문장입니다. 나의 의견을 대변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평가나 비난의 대상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요?

공부할 나이에 굳이 정치에 관심 가질 필요는 없다.”

왠지 답을 고민하게 되지 않나요? 어떤 참여자들은 o에 손을 들기도 할 것 같습니다. 두 문장의 의미는 유사하지만, 두 번째 문장에선 참여자들이 평소에 헤아리지 못했던 부분을 확인하고, 그 견해를 더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사회적 통념을 이유로 제시해서 그 통념에 익숙한 참여자라면 첫 번째 문장에선 x에 손을 들었어도 두 번째 문장에선 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렇듯 문장의 작은 차이로도 토론의 방향이 확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장이 달라지면 토론의 방향도 달라진다

이번 교육을 진행했던 청소년 페미니스트 교육활동가 양성 프로젝트 [경계 넘기]’에서 이전 교육과정 중에 스펙트럼 토론 문장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기에 그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함께 다듬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다

이 문장은 어떻게 다듬어보는 게 좋을까요? 이번 교육에서는 이렇게 고쳐봤습니다.

청소년은 아직 판단이 미숙하여 안전을 위해서는 어른들의 통제가 필요하다.”

‘미성숙’보다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인 ‘판단이 미숙’으로 바꾸고 ‘안전을 위해서’와 같이 청소년에 대한 통제를 합리화하는 사회적 통념을 근거로 제시하고, ‘도움’보다는 견해가 더 명확히 드러나는 ‘통제가 필요’라는 문구를 넣었습니다. 판단이 미숙하다고는 생각하지만, 통제까지는 아니라고 보는 사람, 판단이 미숙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통제라고 보는 사람 등 여러 갈래로 의견이 나뉘며 그 차이를 되짚어보기에 좋은 문장이 되었습니다.

위티의 문장들을 수정해본 피피티 슬라이드 화면

 

참여자들도 두 문장을 비교해보며 어떤 것들이 중요한지, 다른 문장들은 어떻게 다듬으면 좋을지 알게 되어 좋다고 했습니다. 저에게도 많은 배움이 되는 시간이었는데요. 최근에 다녀온 교육에서 앞 프로그램은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많은 인권의 문제들을 찾아냈던 참여자들이 이후 토론 시간에는 헤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엔 저도 당황한 마음에 같이 헤맸는데…. 루트의 방법론 교육을 들으며 그 교육에서의 질문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교육이 유달리 마음에 오래 남은 이유는 아마도 참여자들과의 통했던 순간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와 비슷한 사회적 조건에, 비슷한 목표를 갖고 있는 참여자들을 만난 건 아주 오랜만이었는데요. 사람들에게 교육은 주로 연령이 높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처럼 여겨지는지, 교육장에서 종종 놀라거나 의심하는 듯한 반응이나(“인권교육은 얼마나 해보셨어요?”, “너무 어려보이셔서 강사이신 줄 몰랐네요.” ) , 무례한 질문(“몇 살이세요?”, “관련된 학과를 나오신거에요?”)들을 마주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의 위치를 신경쓰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함께 경험하고, 나눌 이들을 만난 것 같아 좋았습니다. 교육을 시작할 때를 돌아보면 잘 모르고 경험도 없는 내가 해도 되는건지 의심이 될 때마다 나와 닮은 이들이 인권교육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교육에서도 그런 힘을 얻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저도 참여자 분들에게 그런 경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연잎(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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