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노동에서 ‘안전’의 권리를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청소년노동인권강사양성 교육과정에는 보통 앞부분에 청소년인권에 대한 것이 들어갑니다. ‘보호’라는 이름의 차별 속에 갇힌 청소년의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청소년과 동등한 시민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교육을 선행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노동인권교육이 아니라 ‘노동법’교육이거나 ‘노동자권리교육’으로만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노동현장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권리의 주인인 노동자로 인식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만나게 되니 인권교육의 장은 문제해결을 위한 법과 제도를 알려주는 장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권교육을 준비할 때는 우선적으로 하는 일은 참여자를 분석하고, 요청받았거나 나누고 싶은 교육 주제에 맞는 교육의 목표를 정합니다. 그리고 나면 이번 “인권교육을 통해 남기고 싶은 한 문장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핵심 메시지를 정리해봅니다. 노동인권강사단 역량강화 교육에서 ‘노동과 안전’에 관한 주제를 다루게 되며,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과 주로 노동인권교육을 하는 경우에 ‘노동과 안전’은 주로 산재그림판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무엇이 산재이고, 산재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교육하는 기존의 교안들을 보며 더욱 고민이 되었던 지점입니다. ‘노동과 안전’에 대한 감수성 높이려는 인권교육이라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그리고 참여자에게 어떤 것을 남겨야 할까요? 특히나 그 대상이 청소년에게 노동인권교육을 하는 강사단이라면 무엇을 고민하게 해야 할까요?

당장 노동을 하며 노동현장에서의 안전과 밀접한 청소년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노동자로서의 자신을 인지하지 않고 있는 청소년에게 산재그림판으로만 알려주는 ‘안전’이야기는 자신의 삶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청소년의 일상에서 안전의 문제를 찾아보기 위한 질문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의 조율을 거칩니다. 일테면 “급식에서 학생의 알권리는 실현되고 있나요?”라고 묻는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참여권을 이야기할 때 청소년들이 많이 제기하는 것은 급식의 메뉴를 학생이 참여해서 바꾸는 것에 한정됩니다. 막상 내 먹거리가 어떤 안전의 문제를 품고 있는지, 그것을 알아야 할 권리가 내게 있는지 등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인권강사단도 이런 문제를 학생의 안전의 문제이자 학생의 권리로서 인식하지 않습니다. 인권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 당사자의 권한강화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를 알려주고 해결책을 주는 교육 대신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볼 수 있는 감각을 키워주는 것이 되어야겠지요. 그래서 청소년에게 던져 보면 좋을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해보았습니다.

건강과 안전도 노동자의 권리임을 일깨우는 노동인권교육에서 안전의 책임은 다친 ‘나의 탓'으로 여기게 만드는 이 현실에 의문을 품고, 다르게 상상하게 하는 위한 질문은 없을까? 그래서 다음의 사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엔터프라이즈호침몰

   약 30년 전인 1987년 3월 6일 ‘Herald of Free Enterprise’라는 이름을 가진 영국의 여객선이 침몰하는 사고로 193명의 승객과 선원들이 사망하는 참사를 경험했다. 배의 부갑판장이 뱃머리 문을 닫지 않아 벌어진 사고였다. 열린 뱃머리 문으로 바닷물이 들이닥쳐 배가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심을 잃은 채 침몰한 것이다.

     – 이 사고는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참여자들은 세월호를 떠올리시고, 본문에 “배의 부갑판장이 뱃머리 문을 닫지 않아”라고 나오는 점도 고려할때 부갑판장이 처벌을 받고 끝났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노동운동을 오래 하신 분들이고, 노동인권교육을 하신 분들이기에 동시에 이런 문제에서 사회적 책임, 기업의 책임이라는 답도 동시에 내놓았습니다. 물론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사고는 사회와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시키고, 이런 사회적 경험 후에 영국의 시민 사회는 약 20여 년의 운동을 통해 2007년 7월에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을 제정하고 2008년부터 시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사고의 처리에서 주목할 지점은 “배가 출항하기 전 뱃머리 문을 확인하도록 하는 감독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점, 문이 열린 상태임을 알리는 경고등과 같은 최소한의 장치도 갖추어져있지 않았던 점”을 기업의 과실로 보았다는 안전책임의 확대라는 관점의 전환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누고자 했던 핵심메시지는 어디까지 안전하도록 해야 하고, 누가 안전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한 상상을 높여갈 때 안전의 문제가 노동자의 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산재보험 급여 혜택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산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을 신청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대책을 세우고 있나요?”  

 –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이 돌아왔을까요?     

실제로 우리나라 보건의료전문가들이 산재보험이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역할을 하는 국가들의 전문가들에게 했던 질문인데. 이들은 일단 해당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질문을 던진 이들이 시간을 들여 질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의 상황을 설명을 하고 났더니 그들이 이렇게 반문했다고 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질병을 치료하는 등의 혜택을 보기 위해 도덕적 해이를 저지른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서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산재급여를 얻기 위해 산재를 신청할려면 그만큼 충분한 급여가 주어져야 가능할텐데, 우리나라에서 산재는 인정받기도 어렵고 되더라도 급여의 70%밖에 지급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의 의도는 늘 그렇듯 마땅한 권리를 ‘수혜’와 사회의 ‘배려’로 오인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에서 질문받은 노동인권강사들은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온 대답은 하나 정도로 “최대한 검증을 한다”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통해 나누고 싶었던 핵심메시지는 잘 검증하면 문제없을 것이라거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는 항변보다 우선될 것은, 어떤 질문은 애초에 답이 있을 수 없거나 오히려 무엇이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가라고 질문을 되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였습니다. 이 교육은 노동과 안전을 청소년과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주제였지만 노동인권강사단 분들부터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더 넓은 상상력을 가져보는 것이 우선되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 때문에 담았던 내용이었습니다.

– 정주연(루트), 들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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