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권운동/교육에서 서사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이야기의 힘을 잘 활용하기 위한 고민 정리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진행하는 활동가 교육 역량 강화 워크숍에 참여하는 중인데, 그중 ‘삶의 서사를 담은 인권교육’ 시간에 제 경험과 이야기를 나눠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이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은 미완의 글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저는 아직 충분히 생각이 여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말들은 구체적이거나 직접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인 개념에 그치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이 글은 인권활동가들을 청자로 생각하고 쓴 글입니다. 인권교육에서는 진행자들이 이 글의 독자겠죠. 인권교육의 참여자들의 시선이나 입장은 이 글에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시고 읽어주세요.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는 인권운동과 인권교육을 혼용해서 썼지만 사실 두 영역은 겹치는 면이 많지만 서로 다른 지점도 있습니다. 인권교육에서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더 알아보고 싶은 분들은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발행한 <인권교육 새로고침>을 참고하세요. 부족한 글을, 아직 미완의 생각을 글로 쓴 까닭은, 제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잘 모를 때 공부하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 글쓰기만 한 것이 없으니까요.

용석 |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들 후원인

앞서 고민해야 할 것

인권운동/교육의 말하기에 왜 서사가 필요한지를 생각하기에 앞서 인권운동/교육에서 말하기 자체의 목적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요즘 세상은 모두들 나와 다른 의견을 참지 못하고 대화하고 설득하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결론에 대해 찬성 혹은 반대하는지 묻고 그에 따라 편을 가르는 경향이 짙습니다. 인권운동을 포함한 많은 사회운동 진영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태도가 사회운동에서 좋은 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인권운동/교육의 말하기의 궁극적인 목적이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때로는 지식이나 정보 전달이 좀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때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권운동/교육이 만나는 사람들이 세상의 지배적인 질서(가부장제, 군사주의, 젠더 이분법, 자본주의 등등)를 낯설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다른 시선을 세상을 해석하고 그 틈에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초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권운동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사뭇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거나 사회에서 보편적인 생각으로 인정받는 이슈에서 인권운동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형제가 폐지되고 사형이 야만적인 일이라는 게 보편적인 생각으로 자리 잡은 곳에서 인권활동가들이 사형제 폐지를 위해 할 일이 없는 것처럼요. 결국 뭇 사람들이 아직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 인권운동이 하는 일이라면, 인권운동의 주장은 처음에는 많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대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은 인권운동이 놓여있는 현실이고, 바로 여기서 인권운동의 역할이 생긴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다그치거나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으로 단정하고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전광훈, 주요셉 같은 극단주의자들과 대화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 아직 인권운동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무수한 사람들은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이 인권운동이 이야기를 건네고, 대화를 해야 할 상대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운동/교육의 말하기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그 대화를 통해 인권의 가치를 각자의 삶과 이 사회에서 확장시키는 것. 서사를 활용한 말하기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거죠.

 

‘서사’가 필요한 까닭

저는 교육을 나가거나 기자회견 혹은 집회에서 말을 할 때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를 주로 고민합니다. 세 가지 모두 중요하고 세 가지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예컨대 병역거부에 대해 말한다고 했을 때, 학교 선생님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자리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을 바라보고 말을 할 때와 거리 캠페인에서 지나가는 행인을 향해 말하는 상황은 이 세 가지 요소들이 각기 다 다릅니다. 다 중요한 요소지만 이번 글의 주제는 ‘서사’이기 때문에 ‘어떻게’ 말할지에 대해서만 살펴보려고 합니다.

‘삶을 담은 서사’는 바로 그 ‘어떻게’ 말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 중 하나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논리정연하지만 딱딱한 사전보다는 문학과 노래, 영화가 더 인기 있는 이유가 바로 ‘이야기’이기 때문에, 즉 서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에서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힌 사람들 숫자의 90%가 한국 감옥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매우 놀랍니다. 이것만으로도 문제를 드러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뉴스도 금방 잊힙니다. 반면 병역거부자 개개인들의 사연-병역거부 과정에서 부모와 갈등이라든지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에 자신의 삶을 포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삶이란 각각 개별적이고 고유하면서도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고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누구나 자신의 삶을 포개어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흥미를 이끄는 것이 서사가 필요한 핵심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운동/교육에서 서사가 필요한 핵심적인 이유는, 오직 이야기만이 참여자의 삶을 초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권운동/교육은(인권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이 다 그러할 것입니다.) 사회에서 아직은 인정받지 못하는 특정한 사상이나 가치를 옹호합니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다보니 많은 반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이때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의 생각이 옳으니 무조건 따르라는 식의 말하기는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맞는 말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말이라고 해도요. 그리고 그다지 인권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주입식 교육이니까요.

그렇다면 인권적인 방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그게 그 사람의 삶을 초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잘못되었으니 우리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다른 시선으로 자신의 삶 속에서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도록 내 이야기 속으로 초대하는 것이고, 이 초대는 지식과 정보만 가지고는 어렵습니다. 삶에 대한 이야기가 매개되어야 비로소 사람들은 타인의 삶, 혹은 타인의 겪고 있는 상황을 자신의 삶 속에서 생각해보기 마련이니까요.

 

왼쪽 영역은 용석님이 워크숍 중 발표하는 모습. 오른쪽 영역은 이번 고개넘기 워크숍 때 참여자들이 모둠으로 앉아있고 앞에서 진행자와 발표자가 앉아서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왼쪽: 고개넘기 워크숍에서 발표를 하는 용석님의 모습. / 오른쪽: 이번 고개넘기 워크숍 모습.

 

어떤 서사를 할 것인가

그렇다고 이야기만 있다면, 삶을 담은 서사만 있다면 다 되는 것이냐.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영화든, 노래든, 소설이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작품이 있는 반면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이야기’라고 다 공감을 자아내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권운동/교육에서 말하기의 방식으로 서사를 고민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삶은 담은 서사라고 하면 사람들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죠. 감정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이야기는 결국 신파로 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파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권운동/교육에서는 신파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운동은 불쌍한 사람 돕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불쌍하게 만드는 구조를 비판하고 불쌍하게 취급당하는 이들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삶을 담은 서사’에서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것이 바로 논리성, 합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자극하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논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논리는 감정과 반대의 성향이라고 여기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감동을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그 안에 신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서사 구조를 살펴보면 아주 촘촘하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흐름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때의 논리, 합리라는 것은 수학 공식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반합이니 변증법이니를 말하는 것도 아니죠.

서사의 흐름이, 삶의 맥락이, 감정의 변화가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합리성과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기승전결 같은 그런 거 말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이 바로 감정과잉입니다. 다른 이의 감정을 움직이려다 보면 내가 먼저 흥분하거나 분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감정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말하는 사람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감정을 몰아가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제가 출판사 다닐 때 노동조합 활동을 했는데, 회사에서 겪은 불합리한 일들을 블로그에 많이 썼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던 글은 아주 드라이하게, 어떠한 판단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겪었던 일을 진솔하게 쓴 글이었습니다. 반면 제가 먼저 화가 나서 사장 욕하고 간부들 욕한 글은 사람들에게 외면 받더라고요. 감정이든 생각이든, 사람들은 스스로 해야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건 슬픈 거야, 이건 화나는 거야, 이 이야기를 듣고 당신은 분노해야 해, 이게 옳은 거야, 그건 틀린 거야.” 이런 방식의 서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고, 그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포개어 보면서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어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도우면 되는 것입니다. 분노는 사회 변화의 에너지로 조직해 내는 일이 인권운동/교육의 역할이지 분노를 선동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화만 내다가 실제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 이 글은 용석 님의 브런치(링크)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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