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국가인권위 결정례, 그 너머까지 한 걸음 더
인권교육에서 국가인권위 결정례 활용하기

‘이것도 인권인가요? 당연하지?!’ 최초(?)의 인권잡지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이런 꼭지가 있었습니다. 벌써 10년 전의 잡지라 이제는 ‘이게 왜 인권인지’ 묻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때만 해도 ‘너 커서 뭐 되고 싶어?’, ‘만화책 대여하는데 주민번호가 필요하다구요?’, ‘불의를 보면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드라마 속 캐릭터’ 등 너무 일상적이어서, 때로는 너무 사소해서 따져 묻기 애매한 경험과 사안들을 인권의 관점으로 살펴주기에 꼭 찾아읽곤 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나면 때로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인권침해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그러면서 점점 인권 침해다, 아니다 하는 결과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이슈를 어떤 관점에서, 누구의 입장에서 살펴야 하는지, 사건을 둘러싼 맥락을 살피는 힘이구나 생각하게 된 것도 같습니다.

 

과정과 맥락살피기의 중요성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례는 ‘이것도 인권인가요?’의 법률버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다양한 경험들을 헌법과 각종 법률을 토대로, 다만 아주 적극적으로 법률을 인권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적용한다고나 할까요. 무엇이 차별인지, 왜 인권침해인지, 어떤 지점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지, 책임주체는 누구이며, 사회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점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결정례가 우리 사회의 인권기준으로 자리잡게 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런 바람으로 인권교육에서도 적극 결정례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지난 7월 국가인권위 인권교육가 양성과정의 ‘평등권 교육’은 차별과 관련한 결정례를 토대로 진행했는데요, 결정례를 어떻게 보면 좋을지 나눠보려고 합니다.

 

우선 인권교육에서 나누면 좋을 사례를 찾았는데요, 차별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쉽게 걸려드는 차별의 그물이 촘촘하게 담긴 사례, 법률이 때때로 기계적으로 적용, 해석될 수밖에 없음을 고려할 때 진정인/피진정인의 마음과 상황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사회문화적 조건들을 짚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정했습니다. 그리곤 참여자들이 쉽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진정인의 주장, 피진정인의 주장을 요약해 설명하였습니다. 교육에서의 미션은 피진정인의 주장에 대한 참여자의 의견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피전정인의 주장은 대개 기득권을 옹호하거나 내재화된 고정관념을 반복하는 논리가 많아 이에 대한 생각을 점검해보거나 반론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감수성을 확장시킬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사례의 마무리 강연에서는 결정문에 드러나지 않은 결정의 중요한 판단요지와 함께 그 외 인권의 관점에서 짚어야 할 부분은 없는지 한 번 더 돌아보는 과정을 가졌습니다. 인권위에서 최대한 인권의 관점으로 사안을 점검하고 법률을 해석하고 있지만, 이는 현행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삶은 법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인권교육은 그 너머를 살필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법 너머에 숨겨진 마음을 살피다

첫 번째 사례는 ‘뇌전증을 이유로 한 체육강좌 이용 제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2008_살짝쿵_인권위_뇌전증 202008_살짝쿵_인권위_뇌전증_권고

국가인권위는 ‘장애인이 체육활동 프로그램 참여 시 과도하게 진단서와 보호자 동행을 요구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과 장애인을 차별하는 <문화교육원 이용약관>의 규정을 개정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분명 체육시설 이용제한이 장애로 인한 차별임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만으로 충분할까요? 우리사회에서는 이와 비슷한 경험, 장애‧나이‧인종 등을 이유로 출입이나 용역과 재화의 이용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발 나아가 누가 안전을 이유로 이러한 제한을 당하는지,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지 구조를 들여다 봐야 하지 않을가요. 그래서 ‘안전 때문에 ○○은 혼자 출입해서는 안됩니다.’라는 문장을 채워볼 것을 요청드렸습니다. 노인이나 임산부의 경우 사고 위험이 높아서 출입을 금지한다는 목욕탕, 시각장애인은 미끄러져 넘어질 수 있으니 출입할 수 없다는 사우나, 정신장애인의 출입을 금하는 복지시설 등… 안전이 중요함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요? 다만 안전을 이유로 누군가를 통제를 할 것인가, 안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볼 것인가는 그 사회의 인권감수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참여자들 모두 이에 동의하면서 안전을 강화해 누구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전문성과 규칙(법규) 앞에서는 조금 주춤하게 됩니다. ‘운동을 해도 좋다는 의사의 진단은 필요한 것 아닌가?’ 사고에 대한 불안감과 그 책임의 문제를 쉽게 해소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주변의 모든 위험을 완벽하게 예방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공공기관, 시설에는 ‘안전사고 대응 실무 매뉴얼’을 갖추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본 사례의 해당기관에도 매뉴얼이 있었고, 응급환자 유형별 행동요령도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매뉴얼에 따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던 걸까요? 혹시 장애인이나 어떤 위험요인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기 때문은 아닐까요? 비단 해당 사례의 시설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많은 기관들이 위험에 대응하는 역량을 키우기보다 위험요소가 있는 사람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서 이를 내부규정으로 합리화 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두 번째 사례는 ‘정신병원의 휴대전화 소지 제한’에 관한 사례입니다.

202008_살짝쿵_인권위_휴대전화반입금지

해당 사례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입원환자의 휴대전화 소지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74조에 따라 치료 목적으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시에 따라 제한하고, 같은 법 제30조에 따라 통신 제한의 사유 및 내용을 진료기록부에 기재할 것과 이와 관련하여 직원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정신건강증진시설에서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원칙을 잘 상기시켜주고 있는 반면 어떤 마음의 움직임을 불러오기엔 형식적인 면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원칙에 앞서 ‘내게 휴대전화는 어떤 의미인가,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데서 출발하면 어떨까요? 휴대전화는 단순한 통화수단을 넘어서 여러 가지 정보 습득, 문화생활 향유, 추억의 저장, 일정의 기록, 생각을 표현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는 일상의 필수품이자 경우에 따라 분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개인과 분리되기 어려운 물건입니다. 이는 입원한 환자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뿐인 낯선 공간에서 휴대전화만이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주고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유지시켜 줄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할 때 참여자들도 보다 깊이 환자의 상황과 함께 왜 권리여야 하는지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국가인권위 결정례는 인권을 가늠하고자 할 때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재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인만큼 인권교육에서도 감수성 향상을 위한 중요한 마중물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다만 결정문, 법률에 갇히지 않고 그 너머를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글쓴이: 묘랑(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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