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짓는사람+들] 어제는 저기가, 오늘은 여기가, 내일은 어딘가가 아플 나‘들’에게
-활동회원 조혜욱 님의 이야기입니다.

 

글의 한 구절이 담긴 조혜욱 님의 글 전시 사진

 

 

 

 

 

 

 

 

 

 

 

 

 

 

 

전시된 글 구절에 공감을 표하는 말을 달아둔 참여자의 포스트잇을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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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욱 님의 글 전시 사진

 

돌이켜보면 시어머니는 내가 처음 인사드리러 간 날부터 ‘늙은 여자’였다.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보다 훨씬 오래 산 사람이다. 내 엄마는 큰애가 돌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기에 나는 오직 그녀를 통해서만 ‘늙은 여자’가 하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늘 말할 사람이 필요했다. 말을 나눌 사람이 아니라 말을 들어줄 사람. 꼼짝없이 듣고 있을 사람으로 며느리만한 건 없었다.

그렇게 26년간 그녀는 말하고, 말하고, 말했다. 말의 9할은 어디가 아프다는 거였는데 그 끝은 항상 ‘내가 참 그렇게 애쓰며 살아왔다’였다. 그녀에 의하면 고생은 결혼하면서 했고, 그 전에는 부잣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랐으며, 니 시아버지는 아무 한 게 없고, 그 때문에 여기저기가 아픈 거였다. 내가 마무리해야 하는 말도 하나였다. ‘어머니, 정말 대단하세요!’ 그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그녀는 다시 어디가 아픈 것으로 돌아갔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녀가 말을 시작할 기미를 보이면 왜 자식들이 휙 나가버리는지 깊이 이해했다. 휙 나가버릴 수 없는 며느리는 전화로는 한 시간, 얼굴을 대면하고는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아침부터 밤까지 그녀의 말을 들어야 했다. 밥을 하는 내 옆에 의자를 끌어와서, 칭얼대는 아이들로 정신없는 나를 붙잡고서, 청소기를 돌리는 나를 따라다니며, 그녀는 얘기를 이어갔다. 80kg에 육박하는 체구와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고 말이 느렸다. 나는 듣기 위해 혹은 안 듣기 위해 별도의 신경을 써야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면 차라리 내 귀를 때리고 싶었다. 게다가 그녀의 얘기는 신기할 정도로 내용이 똑같았다. 마치 대본을 외운 것처럼 조사와 토시 하나까지 같았고 말을 할 때의 표정과 몸짓도 그대로였다. ‘동문시장에서 내가 어이쿠 하면서 넘어지고는’ 하면 그 다음 말을 대신 해줄 수도 있었고 ‘어이쿠’의 동작도 같이 할 수 있었다. 진정성이 느껴지긴 했지만, 반복되는 얘기는 벽에 못 박는 소리처럼 지겹고 피곤했다.

정작 남편은 우리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컴퓨터를 하거나 티비를 봤다, 나는 틈틈이 남편을 노려봤다. 그녀가 드디어 자러 들어가고 나면 내 몸과 마음은 아이들에게 시달렸을 때보다 더 지친 상태가 되었다. 남편은 내게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했다. 나는 미안함 위에 고마움을 얹는 남편에게 분노했다. 고맙다니, 자기도 하기 싫은 이 짓을 대신 계속 해달라는 건가.

나는 아프다는 말에 완전히 질려 있었다. 나이가 들면 몸이 아픈 건 당연하고, 자식이 좀 신경 안 쓰고 살게 아파도 괜찮은 척하는 게 어른다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늙어서 아프단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머리 싸매고 앓아누웠어도, 어떻게 지내냐는 자식의 전화에 ‘엄마야 별일 없지. 너는 잘 지내니?’ 할 수 있는 노년을 살겠다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 입에서 아프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상체를 숙여 머리를 감으면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걸핏하면 목에 담이 걸렸다. 무릎에서 안 나던 소리가 나고, 컴퓨터를 오래 하면 눈이 감당을 못했다. 몇 년 사이에 연달아 골절된 발목과 손목은 큰 기능은 회복했지만 섬세한 작동은 예전 같지 않았다. 모든 게 나만이 알 수 있는 증상이었고 처음 경험하는 낯선 감각이었다. 그 이상함에 대해서 나는 자꾸 얘기하고 있었다. ‘허리가 너무 아파. 머리를 못 감겠네’ ‘왜 이렇게 눈이 시리지?’ ‘ 오른 손과 왼손 꺾이는 정도가 다른 거 같지?’ 20대가 된 아이들은 무심히 말했다. ‘병원 가봐’ ‘늦게 자니까 그렇지’ ‘나이 들어서 그래’

서운했다. 내 상태가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걸 이해받고 싶었다. 허리만 아픈 게 아니라 어떨 땐 다리도 저려. 몇 달 전에 멀쩡히 읽었던 책인데 지금은 안 보인다니까? 말이 반복될수록 아이들은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나와 같은 처지인 남편은 좀처럼 내색을 안 해서(내가 바라던!) 나만 엄살쟁이가 됐다. 아이들로서는 알 수도 없고 짐작도 힘들겠지. 눈이 침침한 게 뭔지 20대에 어떻게 알겠는가.

나도 모르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다른 시기와 다르게 몸의 퇴화를 경험하고 있고, 그것은 죽음이 비현실의 영역에서 현실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뭘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지고 그 정도도 심해지는 것은 허리 통증이나 눈의 침침함과는 차원이 다른 낯설음이었다. 장볼 것이 생각나서 메모하려고 볼펜을 들었는데 뭘 적으려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 말을 하는데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 세수하면서 생각한 것이 세수 끝나고 나니 뭐였는지 모르겠는 것. 그런 순간이 어이없고 당황스러워 몰래 인터넷으로 치매증상 테스트를 해보기도 했다. 다른 건 나와 비슷한 남편은 이 깜박깜박 증세가 없어 내 상태가 더 걱정스러웠다.

현관문 사건은 이 두려움에 정점을 찍었다. 아파트 복도에서 재활용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조금 열어둔 현관문이 바람에 닫혔다. 정리를 마치고 문을 열려는데 현관 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다. 바꾸기 귀찮아서 5년째 같은 번호를 쓰고 있었다. 5년 동안 내가 번호를 몇 번이나 눌렀을까.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손이 기억하고 있어야 할 그 번호가 하얗게 날아가 버린 것이다. 마침 집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었는데, 계속 삑삑 소리가 나자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고 나왔다. 번호를 잊었다는 내 말에 다들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나는 해프닝인 척 넘기고 싶었지만 실은 너무나 무서웠다. 뭐였는지 생각이 안 나. 이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만 안다는 것, 남들과 내 상태를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외롭게 했다.

말을 찾아야 했다. 공포에서 나를 꺼내줄 말. 그날 밤 나는 눈을 감고 기억이 안 나는 상태를 소환해 머물렀다. 그때의 느낌과 감각, 감정의 색깔 등이 분명한 모습을 갖추었을 때 그것을 글로 옮겼다.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은 예고 없이 정전이 되는 순간 낯선 공간에 놓이게 되는 것과 같다. 불이 꺼지면서 이제까지 있던 곳이 갑자기 모르는 세계가 되어버리는 것. 물체도 배경도 같은 색이어서 형태를 구분해낼 수 없는 것. 머리는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데 심장은 빠르게 뛰는, 속도의 어긋남에서 오는 울렁거림.

내 깜박깜박증이 비로소 언어를 갖게 된 것 같았다. 아픈데 통 진단을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정확한 진단명이 내려진 것처럼 후련하고 마음이 놓였다. 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언어의 힘은 생각보다 셌다.

나는 마음을 내어 그녀, 어머니를 생각했다. 내 깜박깜박증에 그랬듯 어머니의 말을 종이에 옮겨보려 했다. 평생을 같은 말을 반복하는 그녀와 공명해보고 싶었다. 그것은 노년을 내 삶에 허락하는, 일종의 의례였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던 말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있었다. 어머니의 구체적 사연은 사라지고 듣기 싫어 소리 지르는 내 마음만 남아있었다.

어머니의 히스토리와 아픈 몸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나를 위한 의례가 되었으므로, 나는 어머니의 얘기를 이번엔 내가 청해서 들어야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벌써 한숨이 나오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도 해보려고 한다. 듣기 시작하자마자 자동적으로 귀를 닫을 게 뻔하니 아예 말을 받아 적어봐야겠다.

사랑해서가 아니다. 미안해서도 아니다. 시어머니에서 한 ‘늙은 여자’로 한번쯤은 낯설게 만나보고 싶어서다. 여기저기가 아플 내 노년을 심호흡하며 맞이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에서다.

 

*작성: 조혜욱(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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