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여덟살 구역] 우리에게는 동료가 필요해

사교육 아니거든요

책언니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3년째. 재작년에 처음 만나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는 친구들이 딱 세 사람 있다. 유림, 기훈, 진우. 책언니 원로멤버들이다. 이 세 명을 고정으로 새로운 친구들이 한두명씩 들고 나는 과정이 있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원로멤버 세 명에 새로운 친구 네 명, 이렇게 일곱 명과 함께 하는 책언니를 시작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새로 온 친구들 비중이 더 높은 건 이 그룹에서는 나름 처음 있는 일이다. 새삼스럽게 새 출발 하는 기분으로 매주 목요일(수업 날)을 보내고 있다.

요즘 하는 책언니 수업은 이 목요일 일정 딱 하나밖에 없다. 작년에 있었던 1년짜리 수업들이 끝난 이후로 새로 요청이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요즈음만의 문제는 아니고, 작년부터 쭉 그랬다. 책언니를 찾는 사람들이 없다. 이대로는 이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한숨이 푹푹 나온다. 외부에서 책언니 요청이 잘 들어오지 않는 것과 재작년부터 만난 책언니 그룹의 인원구성이 몇 달 주기로 계속 바뀌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실질적으로 책언니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보통 엄마다. 막상 아동 본인은 책언니를 계속할 의향이 있는데, 엄마가 더 이상 원치 않아 올 수 없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일반적인 부모들은 ‘책 읽어주는 언니’라는 활동에 대해 큰 메리트를 못 느낀다. 그나마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고, 대안교육에 관심이 있는 부모들이 연락을 해오는 편인데, 그런 분들이라 해도 결국엔 ‘내 아이의 공부(지능)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이냐’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노골적인 사교육을 원하는 부모들은 어차피 책언니의 존재 자체에 관심이 없고, 은근한 사교육을 원하는 분들 또한 이게 ‘조기 논술교육’의 성격이 조금도 없다는 것(오히려 그것을 반대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피어나던 관심을 빠르게 접는다. 작년에 만났던 한 여자애도 그랬다. 그 애는 몇 달 만에 책언니 대신 국어선생님 출신 어떤 분이 운영하신다는 독서․논술프로그램으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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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언니는 교육 상품일 뿐인가요?

책언니 수업을 재개한 첫날 인상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움의 인사를 나눈 것도 잠시, 남자애들 몇 명이 도서관 한 구석에 배 깔고 드러누워 만화책을 보기 시작했다. 수업하는 방으로 들어올 생각을 않는 녀석들에게 우리는 “너희가 이렇게 만화책만 보면 우리가 여기 올 이유가 없지 않냐! 자꾸 이러면 다음 주부터 확 안 와버린다?” 심통 섞인 협박을 건넸다. 이젠 그래도 친해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나름 센 의사표현이었던 셈인데, 그중 한 명이 질 수 없다는 듯 이렇게 받아쳤다.

“그래? 그럼 우리 엄마가 낸 돈 돌려줘.”

간만에 가슴에 스크래치를 대박으로 내준 한마디였다. 돈이 참 무섭긴 무섭다. 그 말 한마디로 책언니에 오는 아이들과 책언니들 사이에 일종의 교환관계가 성립됐다. ‘돈’을 매개로 책언니들이 제공하고, 이 사람들이 제공받은 건 대체 뭔가. 인문학 수업? 아동이 소화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지적인 내용? 그림책에서 은유 파악하는 스킬? 돌봄을 통한 안정감? 그동안 애써 흘려들었던 엄마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애가 책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 이거 하면서 책 읽는 습관만 들어도 좋겠어요.” “이게 논술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간접적인 효과가 있지 않겠어요?” 아무리 독서․논술, 사교육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 뭐 하나. 부모들은 이미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분들은 은연중에 자신을 일종의 교육·돌봄 서비스를 구매한 소비자, 우리를 ‘책언니’라는 이름의 교육상품으로 파악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장자본주의 아래에서 교육은 이미 소비의 영역에 편입된 지 오래다. 내 이익을 챙기려는 감각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아동·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한다는 건 ‘내 새끼의 성공’을 열망하는 부모의 욕망을 채워주는 역할에 머무르게 된 속물적 교육, 그리고 모든 관계를 돈을 매개로 한 교환관계로 환원시키는 관성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요즘 들어 부쩍 실감하고 있다.

책언니를 지속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여덟살이 책언니를 한다고 책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유달리 똑똑해지는 것도 아니고, 시험을 잘 보게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간에 참여자의 눈에 띄는 성취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다. 애초에 ‘인문학’을 이라는 신종 스펙을 장착한 어린이 양성, 뭐 그따위 목적으로 책언니를 시작했던 것도 아니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책언니를 시작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결정권을 가진 어른들에게 충분히 우리의 지향을 전하고 설득하는 일이 꼭 필요했다. 이 사회에서 주변부로 소외된 어린 사람들의 삶을 전면으로 불러내기, 그들을 힘으로 통제하는 교육·양육방식에 대해 비판하기,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내 아이의 능력치 상승에 대한 기대로 우리를 찾은 엄마들 앞에서 그 기대를 꺾고, 우리가 함께 지내는 과정 자체를 인정해달라 요청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이 설득이 이뤄지지 않거나 실패했을 때, 우리는 책언니를 새로 찾은 애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3년째 만나고 있는 세 명의 경우, 그 애들의 엄마들이 우리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하다. 이 그룹에서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아이들은 책언니들과 그림책으로 수업을 하고, 엄마들은 그 옆방에서 나다의 다른 상근자와 함께 인문학 수업을 했다. 단 몇 달이었지만, 내 자식에 대한 관심사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사회와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폭넓게 나눈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책언니’라는 활동 자체를 지지하게 된 면이 있다고 본다. 얼마 전에도 새로 수업을 시작한 아이의 엄마가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 같은 건 갖지 마시라. 다른 엄마들에게도 얘기 많이 들었다. 나도 책언니들이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얘기를 들려주셨다. 새로 합류한 분들이 책언니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내심 자신 없는 맘이 있었는데, 그 말이 너무 힘이 됐다.

동료가 되어줘요

애초에 우리는 책언니가 일방적인 교육이 아닌 어린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과정, 경쟁적인 교육에 대항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 만남이 단기적인 과정이 아니라, 오랜 일상으로 지속되기를 바랬다. 누구하고든 오래 만나야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도록 함께 쌓은 시간의 무게를 통해 그 사람의 존재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내 삶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여덟살들과 그렇게 오래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동화되기를 바란다. 거창한 지식보다는 스스로의 약자성을 인지하고, 다른 약자들과 같이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태도를 나누고 싶다. 나 혼자 잘난 거 말고, 내 옆의 사람들이랑 같이 살아가기. 책언니를 계속 해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건 이 평범하고도 어려운 지향을 함께 지고 가줄 사람들이다. 어린 사람들, 이미 커버린 사람들, 주변 모두에게 요청하고 싶다. 우리의 동료가 되어 달라고.

* 글쓴이: 엠건(교육공동체 나다)
* 출처: 인권오름 제 434 호 [기사입력] 2015년 04월 15일 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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