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서사의 힘
제주가 품은 서사와 교육이 만난 시간

빗자루를 탄 마녀

이 그림을 보면 여러분에겐 어떤 호기심이 생기나요?

–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어디로 가는 걸까?

– 저 집은 어디일까? 마녀의 집일까?

– 왜 하필 빗자루를 타고 갈까? (여성이 아니었다면 빗자루가 아닌 다른 걸 탔을지도)

– 마법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 저 사람은 어쩌다 마녀가 되었을까? 아니, 정말 마녀가 맞긴 한 걸까?

한순간을 포착한 그림이지만, 우리는 어느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떤 존재일지, 이 이야기는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집니다. 최근 출판된 『이야기의 탄생』의 저자, 윌 스토는 ‘햇살이 내리쬐는 흰 벽처럼 삶의 부수적 배경이 되는 장면보다는 삶에 스며든 어떤 문제를 암시하는 장면에 사람들이 더 끌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뇌 실험 결과를 통해 소개합니다. 사람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존재이면서 이야기에 이끌리는 ‘서사적 존재’임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겠지요. 한해 수천, 수만 편의 영화나 드라마가 쏟아지지만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우리 앞에 당도해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많은 이들의 어릴 적 기억 속에 누구의 특별한 가르침 없이도 이야기를 만들며 놀았던 추억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아도 사람들이 얼마나 이야기를 듣고 말하기를 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주가 품은 서사와 교육의 만남

인권교육에서도 서사를 활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어린이책이나 옛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의 인권문제와 연결해 분석해보기도 하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지닌 서사를 직접 듣거나 재현해 봄으로써 당사자들의 고통에 접속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방식의 교육은 대부분 서사나 서사의 주인공을 강의실 안에 초대하는 ‘강의실 안 교육’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민주시민교육 활동가들과 4박5일간 교육기획역량 강화 과정을 진행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마침 교육장소가 제주였고 4박5일이라는 충분한 교육시간이 주어진 덕분에 ‘현장으로 찾아가는 교육’을 시도해볼 수 있었습니다. 인권과 민주주의 이슈가 없는 지역은 없겠지만, 특히 제주는 4.3항쟁을 비롯, 강정 해군기지, 비자림로 생태파괴, 제2공항 건설 문제까지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야기를 가득 품고 있는 곳이니까요.

먼저 ‘교육에서 서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서사가 있는 교육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한 편의 교육 역시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 인권+민주시민교육이 목표로 삼는 역량강화의 내용 중에는 참여자들이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서사력을 갖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 타인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기 위해서도 서사적 상상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함께 짚었습니다. 그리곤 서사를 활용한 교육의 실제 사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소설 소년이온다 표지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는 고문폭력을 경험한 생존자의 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이 엄청난 말이 지닌 무게와 생존자의 삶에 아로새겨진 상흔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소설의 한 주인공이 전해준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서사적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다섯 글자가 지닌 무게와 빛깔 속으로 좀더 가까이 다가서게 됩니다. 비록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항쟁의 주체였으며 동시에 고문폭력의 피해자인 한 사람의 마음과 좀더 깊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사의 힘이라는 걸 참여자들과 함께 나눈 시간이었습니다.

제주는 온몸으로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는 곳

이튿날 참여자들은 5개의 모둠으로 나뉘어 모둠에서 자율적으로 선정한 현장을 방문한 뒤, 그곳에서 듣고 배운 인권과 민주주의 이야기를 3컷의 사진과 함께 들려달라는 과제를 부여받았습니다. 참여자들은 4․3 평화공원과 학살현장, ‘무명천 할머니’로 알려진 4.3 생존자 진아영 님의 생가, 비자림로 생태파괴 현장, 일제의 군사기지였던 알뜨르비행장, 조작간첩 피해자들을 위한 기억공간 <수상한 집>, 열대동물 사파리(동물테마파크) 조성사업 반대싸움을 벌이고 있는 조천읍 선흘2리 등을 다녀왔는데요. 제주의 지인들을 해설자로 섭외해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 기지를 발휘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날 저녁, 참여자들은 아픈 제주가 던지는 인권과 민주주의 이야기를 몸소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전령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다른 교육의 자리에서 만나게 될 참여자들에게도 틀림없이 서사적 상상력과 울림을 던져줄 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백조일손 영령 희생터와 진아영 할머니 생가

지난 봄 제주다크투어를 통해 방문했던 백조일손 영령 희생터와 ‘무명천 할머니’ 생가 모습

 

정확한 옮김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참여자들의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를 전합니다.

“제주는 온몸으로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상한 집’에 들어가 우리도 수상한 사람이 되고 나면, 국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낸 수상함의 기준을 전복시키게 됩니다.”

“죽은 자의 인권을 지켜주지 않는 사회는 산 자의 인권도 지켜줄 수 없는 사회입니다.”

“선흘2리에는 3대가 같은 학교 동창인 가족이 있습니다. 3대가 마을에 뿌리를 내리며 살 수 있는 힘이 마을과 생태, 이주민과 선주민, 세대간의 공존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한 마을민주주의로부터 나왔습니다.”

서사의 힘은 이리도 강렬하고 매력적입니다.

 

– 글쓴이: 개굴_경내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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