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짓는 사람+들] ‘고장’난 로봇의 꿈을 상상하다
-활동회원 사슴(김혜은)님의 이야기입니다.

 

10년 전 처음 난소에 물혹이 있다는 것을 의사에게 들었다 의사는 아주 간단한 수술이라며 똑 떼어내면 된다고 했다. 수술 소견서를 써 주었으나 수술하지 않았다. 나름 민간요법과 운동(아주 가벼운)으로 가능하리라 믿었고, 어느 날 그런 실천에 자신이 생겨 확인해 보고 싶었다. 다니던 병원에 가면 의사에게 잔소리와 핀잔을 들을게 뻔해 근처 다른 병원에 갔다. 결과는 신기하게도 6센티였던게 2.5센티라는게 아닌가! 놀라웠다 기쁘면서도 이 의사를 믿어야할지 살짝 의심이 들었다. 그러면서 10년이 지났다. 최근 옆구리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많이 아파 가까운 병원에 갔더니 요로결석이 의심된다면서 좀더 큰 병원을 권했다. 병원에서는 가자마자 CT를 찍으라고 했다.

결과는 요로결석은 아니라며 옆구리가 왜 아픈지 모르겠다는 의사는 집에 가던 나를 전화로 다시 불렀다. 아주 큰 덩어리가 보이는데 뭔지 모르겠으니 산부인과에 가 보라고 했다. 나는 보나마나 그때 그 근종이 뻔해 산부인과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큰 사이즈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아랫배가 계속 묵직한 느낌이 들어 이게 터지면 어떡하나 늘 불안했다.

마침 정기건강검진을 해야 해서 첫 아이를 낳았던 병원에 갔다 큰 맘 먹고 수술 날짜까지 미리 생각하고 갔다. 그런데 의사는 싸이즈가 너무 커서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또 큰 병원으로 가라고 소견서를 써 주었다. 올게 왔구나 싶어 다시 날짜를 정해 병원에 갔다. 어차피 하려면 빨리 하자 싶었다. 초음파로 보여주며 뱃속에 200ml 보다 더 큰 우유팩을 난소에 넣고 다니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의사는 나에게 아주 별일 아닌 듯 수술을 하라고 했고 그림을 그려가며 친절한 설명을 하길래 신뢰를 가지려했는데, 웬걸, 근종을 제거하고 나면 또 생길지 모르니 난소를 제거하는게 낫다고 한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뭐 당연히 제거하는건줄 알고 왔으니… 의사는 계속 말을 이어갔고, 이어서 폐경이 곧 올거고 한 쪽이 없는데 나머지 한쪽은 있으나마나니까 마저 수술을 하라고 했다. 뭐 그런가보다… 하면서도 ‘참 난소 쉽게 제거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의사는 한 술 더 떠 난소가 없는데 자궁은 이제 필요 없으니 수술 할 때 한꺼번에 제거하란다. 또 자궁에 뭔가 생기면 또 수술하기 귀찮을거라고 환자를 엄청 생각해 주는 것 같았다. 어차피 두면 자궁내막증, 아니면 또 근종이 어딘가에 생길텐데 이참에 난소, 자궁 모두 떼어내란다. 그거 없다고 여성이 상실감 들고 그러는거, 그거 다 그런건 아니라며 걱정 말라고 한다.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다음 환자를 벌써 불렀다. 간호사랑 상담해 보라며 마치 시간 끌고 귀찮아서 내 보내진것 같았다. 오랜 시간 갖고 있던 근종을 계속 더 갖고 있기란 늘 불안했다 혹시라도 꼬이거나 터지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앰블런스를 타고 와야 할 거라고 전부터 의사가 말했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고민하면서 왔는데 이것저것 모두 ‘쓸모없는데’, ‘귀찮을테니’ 떼어버리라니… 마치 지금 말하는 난소와 자궁은 내 몸이 아닌 듯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아예 몸 어딘가에 종양이나 부스럼이 생길 수 있으니 그냥 내 생명을 가져가시지’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몸의 기능’이란 뭘까? 사람의 기능이란 뭘까?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겨져 제거되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럼 나는 온전히 쓸모있는 존재로 여기 남아있기는 할까?

의사 말대로라면 쓸모없는 기관은 똑 떼어내 버리면 그만이다. 쓸모없거나 문제를 일으킬 인간 역시 사회에서 똑 떼어내 버리면 된다. 나에게 내 몸의 기관이란 뭘까? 내가 나에게 쓸모없으니 버려져! 라고 할 수 있는가? 내 몸이 분절된 느낌이다. 모두 함께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한 기관이 허술하더라도 생명을 유지하고 서로 기대어 제 역할을 하는 것이리라. 몸의 각 기관이 이럴진대 사람은 말해 뭐해.

 

몸의 기관이 기관 하나만의 독립적인 역할로 살 수 없듯이 사람도 혼자만 분절되어 살아갈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어떤 사람이 부족하다고, 낙오됐다고, 하자가 있다고, 사회에서 제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떤 역할을 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존재하기에 역할도 주어지고 서로 기대며 살아간다.

 

가끔 기사에서 가치관이 참 특이한 사람들을 본다. 특수학교를 못 짓게 하고, 자기 자녀가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분리해 달라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아이들이 잘 배울 수 있을까?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까? 갈라치기하고 배제하면 사람사이가 참 차가워진다. 그런데 그 기사가 내 몸 속이라니! 불필요한 근종을 떼어버리고 나면 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겠지. 참 각박해진다. 내가 떼어내버린건 근종이 아니라 돌보고 살펴야 하는 내 몸의 일부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 ‘네 몸 좀 살펴’ 라고 하는 신호를 문제제기하는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없애는 것. 횡단보도 앞에서 만난 빨간불 신호등 하나를 제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병원이 아니라 로봇을 수리하는 공장에 다녀온 기분이다. 일만 하는 기계도 아니지만 쓸모가 있거나 없거나 숨 쉬고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인정되길 바란다. 숨 쉬고 살아가는 동안 떠오르는 무수한 생각은 아무도 모르는 꿈일수도 있고 아무도 모르지만 실재일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는 어떤 시간 속에서도 존재로 인정되길 바란다. 고장난 로봇으로 취급받지 않을 권리도 있지만 어느 땐 고장난 로봇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 질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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