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불편과 인권침해 사이

자유권을 공부하는 인권교육시간에 여는 질문으로 ‘자유가 권리라고 하지만, 저건 쫌 아니지라고 느낀 순간’을 물었습니다. 사실은 코로나19의 감염이 확산되고 있던 때라서 관련해서 언론에서 나온 사건에 대한 생각들이 주로 나올 것이라 추측했는데, 역시나 추측에 불과했습니다. 그야말로 참여자가 일상에서 느꼈던 사례들이 나왔습니다. 도입으로 나누기보다 충분히 찬찬히 이야기해보면 좋았을 껄, 하는 아쉬움이 남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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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이 개를 많이 키우는데 짖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냄새가 심하다.

우리 개는 입마개 대상이 아닌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섭다고 해서 말다툼을 하게 된다.

길에서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 때문에 불편하다.

동네 공원에 술 취한 어른이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서 마음 편하게 갈 수 없다.

각각의 불편과 피해가 충분히 예상되는 일상의 내용들입니다.

자고, 쉬어야할 집이 옆집 때문에 시끄럽고, 냄새까지 난다면 매일이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반면 개가 짖거나 위협하지도 않는데 무서워 보인다는 이유로 째려보거나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면 화가 나기도 할 것이고요, 좁은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며 지나는 사람과 마주치면 피할 길 없는 상황에 짜증이 나기도 하겠지요. 공원에서 술 취해 앉아 있는 어른 자체가 위협적인데 그것만으로는 뭐하고 할 수도 없으니, 차라리 공원에 가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되면, 불편을 넘어 피해로 느껴집니다.

불편과 피해가 예상되지만, 현실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딱히 보이지도 않습니다. 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제제대상이 되지만, 위협하는 것도 아닌 잔소리에 대해 공권력을 동원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설령 누군가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술 냄새’만으로 출입을 금지할 수 없습니다.

이쯤 되면, 누군가의 자유를 방해하는 ‘불편과 피해’는 확실히 금지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등장하곤 합니다. ‘자유롭게 쉬고, 자유롭게 숨쉬고, 자유롭게 걷고 싶은 나를 방해하는 불편과 피해’를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없냐? 는 말이지요. 술 마시고 공원에 앉아 쉬고 싶은 자유와 술냄새 풍기는 사람 없는 공원에서 즐기고 싶은 자유가 충돌하는 상황으로, 권리 충돌처럼 질문되기도 합니다. 종종 인권은 이런 사안에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하구요. 인권교육에서 이런 상황을 자유권의 충돌이나 권리침해로 논의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모이는 것들을 못하게 하는 억압이 있을 때, 인권교육에서 인권 침해라고 말합니다. 인권침해는 보통 힘의 차이가 확연한 관계에서 억압과 폭력 등으로 권리를 박탈당하는 경우입니다. 공권력의 피해나 직장 상사의 부당한 명령이나, 학교 안에서 학생에 대한 부당한 대우 등이겠지요. ‘불편과 피해’ 사례는 고정된 위계나 권력관계가 작동한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골목의 흡연자가 늘 자유로운 것은 아니니까요.

어쨌든 ‘불편과 피해’ 사례에서 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아마도 불편과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제한, 금지’하는 것일 겁니다. 길거리에서 흡연은 모두 금지하고, 공원에 취객출입도 금지, 모든 개는 산책 시에 입마개 착용 등 말이죠. 누군가는 분노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도 피해도 없는 선택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금지해서 얻어지는 자유는 어떻게 봐야하는 걸까요? 어느 정도까지 제한할 수 있을까요? 무엇은 금지되고 무엇은 허용되는 걸까요? 자유롭기 위한 조치인데, 자유를 박탈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질 것 같습니다. 더욱이 금지와 제한을 따지게 되면 과연 끝이 있을지도 걱정이고요.

인권교육은 아마도 이런 이유로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권리로서 어떻게 잘 누릴 수 있을까, 자유를 가로막는 구조와 억압은 무엇일까를 논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 이런 ‘불편과 피해’를 해결하는 사회와 구성원의 역량을 키우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요.

인권활동가 류은숙님의 [사람을 옹호하라]에서 “권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 것, 내 몫에 밝아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놓인 사회적 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어떻게 하면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질문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 역량이 훼손되거나 결핍되면 권리 언어의 오남용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구절을 떠올려보게 됩니다.

 

글쓴이 고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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