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통해 서로의 교육을 들여다보다 – 서로 등 긁어주는 워크숍

‘인권’은 ‘배부른 소리’로 천덕꾸러기지만 ‘인권교육’은 넘쳐난다. 인권의 가치는 눈앞의 이익과 현실론에 치여 시퍼렇게 멍들지만 ‘인권교육’ 시장은 ‘블루오션’이다. 다양한 단위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는 인권교육이 그 자체로 문제일리는 없다. 다만 ‘인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오가는 내용과 가치들 그리고 그 내용과 가치들을 나누는 방식이나 관계가 인권에 반하지 않는지 자문하고 살피는 일은 중요하다. 인권교육을 진행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내가 하고 있는 교육이 인권교육이 맞나?’, ‘2% 부족한데, 비어 있는 구석의 정체는 뭐지?’, ‘분명히 문제적인 행위(발언 혹은 태도)인데 어떻게 해야 단순한 지적질이 아니라 성찰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등의 질문을 품게 된다. ‘서로 등 긁어주는 워크숍’은 그러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지난해에는 이러한 고민을 가진 교육활동가들을 초대하는 방식이었다. 참여자들과 함께 인권교육의 목표, 교육가로서의 자기 점검, 교육 자료의 선정과 활용, 내 안에서 풀리지 않는 쟁점 등을 중심으로 살폈다. 올해는 지역 혹은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교육활동가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자신의 교육활동 경험을 꺼내 놓고 점검하는 것을 목표로 하다 보니 무작정 찾아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신뢰가 쌓이지 않은 이에게 쉽게 등을 내어 줄 이가 있을까? 그래도 한 줄기 기대를 품으며 찾아가보기로 했다. 교육에 앞서 교육 요청자와 충분히 내용과 방식을 조율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교육요청 단위가 가지고 있는 인권교육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품고 찾아간 곳은 인천지역에서 청소년 노동인권 활동을 하는 이들이었다. 교육 요청한 인천지역 교육활동가들의 고민을 충분히 듣고 여러 차례 기획회의를 통해 의견을 반영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다. 진행자와 참여자라는 구분을 최소화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워크숍을 지향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도 차근차근 다졌다.

첫 번째 등 긁기, 교육가 자기 점검과 헷갈리는 쟁점 탐구

첫 만남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 처음 나눈 얘기는 인권교육의 목표였다. 교육의 목표가 교육의 내용과 구성, 진행방식을 결정하는 키이기에 교육가 스스로를 점검하는 첫 질문으로 던져보았다. “나의 인권교육 목표는 ○○이다.” ○○에 들어 갈 것을 구체적으로 적어 달라 했다. 참여자 각자가 실천하거나 생각하고 있는 인권교육의 목표는 무엇일까?인천1

참여자들은 인권교육을 통해 ‘나 스스로가 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거나 ‘소통’하고 ‘상생’하며 ‘동반자’가 되어 ‘함께 살기’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또 인권교육을 통해 그 동안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서로의 인권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가치지향 위주의 포괄적인 이야기들이 주로 나왔다. 서로가 그간 어떤 활동을 이어왔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각자의 경험에 비춰 풀어 놓는 가치 지향적인 말들은 때론 알쏭달쏭하다. 이 알쏭달쏭한 이야기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는 계속되는 이야기 속에서 알 수 있길 바라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다음 질문은 두 가지였다. “인권교육은 ~해야 한다. /~한 교육을 인권교육이라고 하기엔 쫌”과 “인권교육가는 ~하는 사람이다. /이런 인권교육가는 쫌~”.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참여자들이 가장 많이 품고 있는 고민과 질문이 “나 제대로 인권교육하고 있나?”, “나 인권교육가 맞아?”였기에 이를 반영하여 준비한 질문이었다. 참여자들이 생각하는 인권교육은 어떤 것일까? 인권교육이 여타의 교육과 차별되는 지점은 어디일까? ‘인권교육’이라고 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들은 무엇일까? 차별지점은 드러냄과 동시에 풍성한 이야기가 오가길 기대하면서 두 가지 내용을 한 쌍의 질문으로 던져보았다.인천2

첫 번째 질문만 던졌을 때 나올 수 있는 앙상한 답변을 후속 질문으로 보완할 수 있길 기대하면서.
참여자들이 생각하는 인권교육은 책 속에만 있는 그저 ‘옳은’ 이야기 혹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나누는 교육이어야 한다고 했다. 누구나 얘기할 수 있도록 잘 소통하면서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교육이 이뤄질 때 내 이야기도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 것이다. 이렇게 진행되는 인권교육은 앞서 얘기 나눈 목표를 생각하며 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와 연결되었다. 인권교육의 목표는 온데간데없고 ‘인권’을 불편해 하는 이들 곁에 프로그램으로만 동동 떠다니는 ‘인권교육’을 어떻게 인권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 참여자들이 생각하는 인권교육을 잘 실천하고 풀어놓으려면 인권교육가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인천3

인권교육가는 무엇보다 질문을 잘 준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교육을 준비하면서 세운 목표에 잘 도달하기 위해 나는 어떤 질문을 준비할 것인가? 어떤 질문을 통해 참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풀어놓을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인가? 어떤 질문을 통해 참여자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되돌아보게 할 것인가? 등 질문을 잘 준비하는 일은 교육을 잘 준비하는 시작이자 끝인 것도 같다. 기준을 버리는 사람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인권교육가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와 기준은 분명 있겠지만 때론 나도 모르게 한 켠에 쌓여 있었던 편견을 참여자들과 만나 깨닫고 버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번드르르한 말만 앞세우고 교육실을 벗어나는 순간 그 말을 잊어버리는 교육가는 교육가라 하기엔 쫌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

질문을 통해 교육가 스스로를 점검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포스트 잇에 적어 놓은 이야기보다는 자신들이 주로 교육하면서 가졌던 의문과 고민들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의견을 나누는데 더 몰두하기도 했다. 덕분에 점심시간도 훌쩍 넘기고 오후 진행하는 시간은 살짝 쪼그라들었다.

이어지는 <헷갈리는 쟁점 탐구> 시간에는 인권교육을 하면서 스스로도 헷갈리는 쟁점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각 쟁점별로 1부터 5까지 척도를 나누고 내 생각은 어디쯤인지를 정한 후 토론하는 스펙트럼 토론 방식으로 진행했다. 진행팀이 준비한 쟁점은 아래 표와 같이 4가지였다.

쟁점 1을 통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안전과 자유’와 관련한 쟁점이었다. 안전을 빌미로 위험집단으로 쉽게 치부되는 존재들이 누가 있는지, 궁극적으로 안전은 자유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인데 자유와 안전을 대립구도로 놓고 생각한다면 완전한 자유도 안전도 누릴 수 없는 건 아닌지. 어떤 위험집단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확보하는 자유가 아니라 안전 확보를 위한 자유로 인식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논의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쟁점 2는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상정하면서 금기시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청소년에 대한 관점을 세우기 위해, 쟁점 3은 청소년을 향한 보호주의 관점이 사실은 보호보다는 부당하게 권리를 제한하거나 더 많은 권리를 상상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아닌지 톺아보기 위해 마련했다. 쟁점 4는 상호의존적인 권리의 속성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권리의 문제를 개인과 개인의 대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구조적인 문제는 쏙 빠지고 만다.

두 번째 등 긁기, 서로의 인권교육 맛보고 피드백

둘째날은 그 동안 자신이 진행해 온 인권교육을 축약해 진행한 후 진행자가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비추어 잘 된 점/아쉬운 점/고민이 되는 점이 무엇인지를 꺼내놓고 모든 참여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 서로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기획했다.

교육 일주일 전에 각자가 많이 활용하는 인권교육안을 보내줄 것을 제안하고 준비팀에서는 이 가운데 일부를 선정하여 시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기획이 가능했던 것은 인천지역 교육활동가와 준비팀 간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자신의 교육안을 공개하는 일, 다른 인권교육활동가들과 이를 시연하고 살피는 일은 긴장감을 불러올 수밖에 없고, 누군가 나를 평가하려 든다고 여겨질 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워크숍의 취지와 진행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서로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했다. 실제 시연과 피드백의 과정에서 발생할 긴장 또한 고민거리였다. 피드백이라는 것이 자칫하면 이를 진행한 개인에 대한 지적과 평가로 이어질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연을 마치고 하나씩 점검하기보다는 참여자와 준비팀이 실제 교육에서 나에게 고민으로 다가왔던 문제적 참여자가 되기도 하고, 여러 방식의 제안자가 되기도 하면서 최대한 교육안에서 고민을 드러내고 풀어가 보기로 했다. 뭐, 준비팀이라고 누군가의 교육에 ‘빨간펜’을 쭉쭉 긋고 정답을 제시할만큼 완벽한 것도 아닐뿐더러 각 상황에 오로지 하나의 정답이 준비된 것도 아니므로. 다만 우리가 교육활동에서 느끼는 아쉬움, 부족함 그리고 답답함의 이유들을 찾고 채우기 위한 서로의 노력임을 상기했다. 그래서 이 글에서도 하나하나의 프로그램과 오간 내용을 소개하기보다는 우리가 워크숍을 통해 발견한 몇 가지 고려할 점을 제안해보려고 한다.

우선, 인권교육의 목표, 프로그램의 목표와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가.
교육의 목표를 정하고 나면 목표에 부합하는 활동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진행한다. 예를 들어 노동인권교육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과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과 자신이 노동을 인식하는 방식을 점검하는 것에서 출발할 때가 있다. 이를 살피기 위한 활동이 ‘동그라미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농부, 야구선수, 아이돌, 교사, 편의점 알바 등 다양한 직업군을 제시하고 이 가운데 노동자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동그라미 안에, 애매한 경우에는 경계에,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경우 동그라미 밖에 배치한다. 그렇게 배치한 배경과 이유를 통해 나와 우리사회의 인식을 돌아보는 것이다. 각 모둠에서 어떤 기준을 세웠느냐에 따라 같은 직업군이라도 동그라미 안과 밖 혹은 경계중 어디에 위치하는 지 달라질 수 있다. 우리사회가 어떤 인식과 관점으로 기준을 만드느냐에 따라 동그라미의 경계는 사라지기도 하고 큰 장벽이 되기도 하는 비밀을 찾아가 보는 것이다. 그런데 자칫 프로그램을 표면적으로 이해하고 있을 경우 애초의 목표와 취지를 잃어버린 채 현행 법률에 갇혀 분류하는데만 몰두하는 오류를 범한다. 혹은 프로그램 진행에만 매몰되거나 관성적으로 목표와 프로그램을 연결할 경우 참여자들이 노동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치기도 한다.

제한된 교육시간과 많은 참여자 수로 인해 많이 택하는 활동 가운데 하나가 인권침해인지 아닌지, 차별인지 아닌지 OX형태의 문장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방식이다. 또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의 특성상 청소년들이 노동의 현장에서 취약한 만큼 무엇이 인권침해인지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응 능력을 키우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목표일 수 있다. 이 경우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명확한 답을 제시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압박감이다. 그러다 보니 법에 저촉되는 사안 중심으로 설명하게 되면서 일상적인 차별과 모욕은 여전히 빈 구멍으로 남는다. 인권교육의 목표가 현실법의 테두리에 갇힌다면 결과적으로 그 법과 규칙들로 인해 소외된 이들의 현실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 교육의 목표가 인권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목표와 프로그램 사이의 연결고리는 적절한지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는 인권교육이 참여자들에게 열려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권교육활동가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세팅한다. 그러나 막상 교육의 현장으로 들어가면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무수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한 참여자들의 이야기가 교육 안에서 원활하게 소통되고 녹여지고 있는가. 혹시 진행자가 준비한 틀 안에서만 흐르고 있지는 않은가. 참여자들이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풀어낼 수 있는 여백, 진행자의 주요 메시지와 참여자의 이야기가 맞물려 반응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고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참여자 개인의 경험이 그저 운이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지금 자신(우리)을 둘러싼 사회구조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이해할 수 있고, 인권을 지식과 정보가 아닌 나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세 번째는 우리가 교육 안에서 참여자들로 하여금 상상의 힘을 키울 수 있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아니면 교육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답을 들이밀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하는 것이다. 앞서의 OX방식과 마찬가지로 사례를 통해 노동인권의 현실을 들여다보고자 할 때 기존의 틀이나 법을 중심으로 접근하다보면 일종의 답이나 해결책을 제공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나 인권교육이라면 정답과 오답을 가르기보다는 참여자 혹은 당사자로 하여금 그 상황을 충분히 인식한 후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보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에만 현실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대응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그 동안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지식이나 정보전달에 치중한 경우, 참여형을 표방하고 있지만 진행자가 일방적으로 이어가는 경우 등 다양한 피드백 이어졌다. 또한 교육가의 태도나 자세 등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에 말투, 발음 등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의견들도 나왔다. 그런만큼 무척 조심스러운 워크숍이었음에도 이 자리를 계기로 인천지역의 인권교육활동가들이 계속해서 서로를 북돋는 모임을 이어가기로 했다는 소식에 조금은 안도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함께 교육을 기획하고 만들어 오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서로의 교육에 대해 무관심 혹은 폐쇄적이었던 상태에 작은 울림을 만든 듯해서 그 다음이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변화가 이어져 좀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교육으로 그리고 서로에게 든든한 언덕으로 자리하면 좋겠다.

⁍ 정리 ‖ 묘랑과 수정(올해의 기획사업팀 두 멤버가 함께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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