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짓는사람+들] 코로나19와 입시 중 누가 더 힘이 셀까? – 온라인 교육에서 등교 준비까지
-활동회원 우돌(조영선)님의 이야기입니다.

 

우돌(조영선)

교사로 ‘행복한 밥벌이’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학생인권을 만났습니다. 학생인권을 통해 ‘내 안의 꼰대스러움’으로부터 해방되면서 학교를 견디는 힘이 커지고 있어요. 학교에서 좌충우돌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는, 괜찮은 교사이기보다는 ‘괜춘한’ 인간이고 싶습니다.

 

고3 담임을 안 맡았다가, 18세의 첫 선거를 함께 하고 싶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3학년 담임을 지원하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계속 연기되었다. 답답하긴 했지만, 일종의 ‘전시 상황’이고 ‘대피 상황’이라 스스로 다독였다.

그렇게 4월이 되었다. 교육부 장관은 계속 ‘시그널’을 줬다고 했지만, 갑자기 형태와 내용을 모두 알 수 없는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했다. 온라인 개학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 있었지만, 결국 고3 입시를 위한 시수 확보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온라인 개학과 동시에 입시 일정이 12월 3일로 발표되었다. 역시 입시를 위해 교육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문제는 수업의 질이 아니라 출결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할 때,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온라인 수업을 온라인답게 할 것인가, 아니면 오프라인을 온라인에 끼워 맞출 것인가였다. 예를 들어, 교사 집합 연수와 원격 연수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학습자가 학습 시간과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번에 초기 온라인 수업 지침에는 당일 과제 제출 시에만 출석 인정이라고 했다.

실제 3월부터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던 몇몇 학교들에서 줌으로 학생들과 조회를 하고 과목 교사들이 오프라인 수업과 같은 시간에 접속하여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학생들이 똑같이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자기 방에 붙들려 있는 상황인 것이다. 아마도 교육부는 이러한 것이 ‘미래 교육’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공간은 분리되어 있지만, 시간으로는 학생을 통제하는 것. 화면에 접속하지 않으면 결석 처리하는 것.

며칠 후 교육부의 출결 지침이 내려왔다. 수업 기준 5일, 담임 기준 1주일로 하되, 과제 제출이 일주일을 넘기면 결과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오프라인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에 왔는데 교실에 없거나 수업을 듣지 않은 경우로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주목적은 학교 안에는 있는데 교실에 없을 경우 사고가 일어났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챙기는 것이다. 온라인 수업인데 결과 처리가 있는 것은, 정해진 시간 안에 학생들이 접속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전략이다.

전체 배움의 내용에 접근하고 그것을 소화하고 복습하는 접근성과 속도를 자기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것이 아니던가? 온라인 수업을 두고 미래 교육 운운하면서도 현재 가장 전근대적인 출결 시스템을 적용하는 형태의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은 코미디 같았다.

 

21세기 기술로 19세기적 통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

어쨌든 교육부 지침에 따라 우리 학교는 블록 수업으로 시간표를 짜서 진행하였다. 그러면서 어떤 형태의 수업이 가능한가 시험에 보기 위해 여러 가지 형태의 과제를 냈다. 클릭을 5번이나 했는데 과제가 미제출로 나왔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 학생더러는 학교에 오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물을 수는 없었지만, 스마트폰이 그 학생이 가지고 있는 가장 성능 좋은 온라인 접속 기기임이 분명했다. 학교의 기기를 대여해 줄까 물었지만, 자기만 대여받는 것은 거절한다고 했다. 교육부의 호기로운 차등 지원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디지털 격차를 가시화한다는 깨달음이 든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본격 개학 전에 구글 미트로 만나자고 학급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구글 미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이 되니 몇몇 학생은 일이 생겨서 어렵다고 불참했다. 겨우 8명의 학생들을 만났고 학생들이 정말 어색해했다. “안녕하세요?” 하고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나니 침묵이었다. 그나마도 접속한 기기에 따라 소리의 전달 속도가 달라 대화를 이어 나가기 어려웠다. 결국 한사람씩 따로 이야기하자고 하고 학생들을 단체 방에서 내보냈다. 나중에 물어보니, 방이 화면에 나오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일부러 독서실이나 카페에 갔다는 학생도 있었다. 자신을 소개하는 5초 동영상을 이불 속이나 복도에서 찍은 학생들도 있었다. ‘집콕’ 중이라 바깥에서 찍기는 어려웠고, 각자의 가림막을 쓴 것이리라.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하는 이 세대들에게도 온라인으로 사생활이 아니라 ‘공생활’을 하는 것이 처음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2020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였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끼리 자신의 방 또는 집을 공개하면서 얼굴을 보고 만나는 일은 초유의 사태인 것이다. 오히려 오프라인 만남에서는 자신이 맺는 관계에 따라 오픈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정보들이, 온라인으로 연결되니 무차별적으로 오픈당하는 순간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한다며 학생들에게 화면 캡처나 욕설은 ‘학폭’이라며 협박하는 교육 자료들은 엄청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정작 온라인 수업의 형태를 결정하면서는 자신의 정보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제공할 수 있는, 개인정보에 관한 권리는 깡그리 무시된 것이다.

그리고 ‘실시간’은 되는지 모르겠지만 ‘쌍방향’은 불가능했다. 학생들의 말이 띄엄띄엄 들려서 몇 번 말을 하다 멈추기도 했다. 결국 줌 등의 프로그램으로 가능한 수업은 ‘실시간 단방향’ 수업이었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런 것을 태연하게 쌍방향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교육부는 오프라인 교실에서도 어떻게 해야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지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눈치 보지 않고 발표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잘못된 발표가 생활기록부 기재의 근거가 될까 봐 학생들은 조마조마해한다. 그래서 오직 비판받을 가능성이 없는 정답 발표만이 존재한다. 오프라인에서도 이러했으니, 온라인 수업에서 소통이 일어나는지 아닌지에 대해 진정 궁금해할 리가 없다. 그저 학생들을 컴퓨터 앞에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붙들어 놓을 명분만 마련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학교들은 화면으로 보이는 용의 복장까지 통제하기도 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대한민국 교육의 기본은 ‘통제’인 것이다.

 

문제는 기기가 아니라 소통

나의 핵심적 문제의식은, 접속을 위한 기기와 인터넷 접속 환경이 개인에게 맡겨진 상황에서 가장 적은 데이터를 쓰며 단순한 기기로도 접근 가능한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학기 초였다. 학생과 교사가 또 학생끼리도 전혀 래포rapport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상황이 드러나는 일은 학생들에게 두려운 일일 것이다. 온라인에서의 집중은 극과 극이다. 대면이 아니기에 정말 집중하기 위해서는 수십 배의 에너지가 들고, 그것을 포기하면 그냥 누워서 돌려도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학생들이 자신의 몸에 맞게 학습량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져야 하는데, 오프라인 시간표를 고집하는 것이 실시간 쌍방향의 미래 교육이라는 교감과 교무부장의 주장에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나는 당당하게 〈EBS〉 강의를 걸었다. 학생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도 3학년 때는 〈EBS〉 연계 교재를 가지고 학교 수업을 하는데, 연계 교재는 내가 쓴 게 아니어서 〈EBS〉 강사들이 더 잘 가르친다고 했다. 다만 문제를 풀면서 조금이라도 의문이 나는 점을 비공개 댓글에 남겨 주면 꼬박꼬박 답하겠다고 했다. 나는 ‘정말 질문이 달릴까?’ 고민했는데 비공개 댓글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질문이 잘 들어왔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아 다음 차시 전에 전체 피드백을 하였다. 어떤 학생들은 오프라인 때보다 질문하기가 더 편하다고도 했다. 나도 즉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찾아 보고 답할 수 있어서 편했다.

즉, 아직 래포가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질문과 답변, 피드백을 통해 조금씩 래포를 쌓아 가는 과정이 중요했다. 얼굴이 보이는지, 실시간으로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기기나 환경 차이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 화려하지 않은 수업 포맷에, 작은 피드백이라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조금씩이나마 래포를 쌓아 가는 길이었다.

 

코로나와 입시의 싸움, 누가 이길까?

그렇게 수업을 하다 보니, 코로나는 잦아드는 듯 보였고 5월 대면 개학을 눈앞에 두었다. 온라인 수업이 완전 헬은 아니었지만, 학생도 나도 지쳐 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에 나는 누구보다도 대면 개학을 열심히 준비했다. 우선 NEIS와 연결된 코로나19 자가 체크 시스템 참여를 열심히 독려했다. 사실 자가 체크 시스템만큼 황당한 것이 없다. “열이 있나요? 없나요? 증상이 있나요? 없나요?” 스스로 체크하여 교육청에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병에 걸렸는지를 스스로 판단하여 보고하게 하는 것과 똑같다. 감염 판단이 목적이 아니라 보고가 목적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내가 이 질병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주말까지 문자 메시지를 보내 가며 정말 열심히 했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투명 캡을 쓰고 학교에서 찍은 우돌(조영선) 님의 사진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학생 1명이 의심 증상에 2가지 이상 표시를 했다. 이 사실을 매뉴얼대로 보건 교사에게 보고했다. 보건 교사는 학생을 선별 진료소가 있는 병원에 보내 ‘의사의 소견’을 받아오도록 하라고 했다. 얼굴도 못 본 학생인데, 허접한 자가 진단을 바탕으로 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 부담되었지만, 나는 학교 방역의 최전선에 있다는 마음으로, 괜찮다는 학생을 설득하여 병원에 가도록 했다. 그런데 그 학생에게서 전화가 와서, 선별 진료소 간호사를 바꿔 주었다. 간호사는 “이 학생의 증상 완화 치료를 원하는지 코로나 검사를 원하는지”를 나에게 물었다. 그걸 병원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팬데믹 상황 이후에는 코로나19 검사 외에 다른 것으로 판단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 학교는 그 학생을 격리 조치 할 것인지 판단해야 하니 코로나19 검사를 해 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지금 다른 공문을 받지 못해서 현 단계 학교에서 보내는 코로나19 검사 비용은 모두 개인 부담이라는 것이었다. 2014년 세월호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리라 철썩 같이 믿은 헬기가 배를 떠나갈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교육부에서 말하는 학교 방역망은 전혀 가동되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다행히 그 학생은 원래 있던 비염 증상으로 밝혀졌고 곧 증상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등교 개학 후 어떤 학생이 기침이라도 했을 때 코로나19인지 아닌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괴감에 빠졌다.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19 유행이 다시 대한민국을 덮치고 있다. 지금 등교 개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 학교에 1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는 것은 만에 하나의 확률이고, 일어나도 견딜 만한 시행착오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는 무자각 상태로도 조용히 지역 사회 전파 중이다. 또, 현재 줄어들던 확진자 숫자는 다시 증가하여 온라인 개학을 하던 시점과 맞먹는다. 사실 이 정도에서 개학을 할 수 있었다면 온라인 개학을 한다며 그 난리를 칠 필요도 없었다.

한 학생이 확진되면 학교를 폐쇄한다는 매뉴얼도 말이 쉽지 학생들의 심리적 상처나 혹시 제기될 수 있는 책임 추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이 사회의 분위기로 볼 때 확진자가 된 교사와 학생은 자신의 책임이 어느 정도든 간에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친 죄인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문제가 꼭 일어나지 않더라도 물을 마시다 사례 들려 기침이라도 했을 때 주위에 꽂히는 시선들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올해 만나는 학생들은 서로에 대해 알기도 전에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의 숙주로 서로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한 감도가 다 다른 학생들이 한데 모여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낳고 이것이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결국 이 모든 모순의 핵심에는 입시가 있다. 모든 학생을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을 보게 하여 상대적인 등수를 내서 대학을 가게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동일한 조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개학을 하자마자 하루 종일 시험을 치게 하는 모의고사를 볼 것이다. 빨리 모의고사를 봐야 상대적인 위치를 알고 정시로 갈지 수시로 갈지 입시 전략을 짤 수 있다는 여론에 등 떠밀린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런 상황에서 위험을 느끼고 입시가 의미가 없다는 학생들이 시험 선택권을 주장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교육부에서 허가한 체험학습을 쓰겠다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이것은 단순히 모의고사에 대한 걱정만은 아니다. 교육부가 수능을 미뤄 놓은 12월 3일은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강해진다는 겨울의 한복판이요. 전문가들이 계속 경고해 왔던 3차, 4차 유행이 예상되는 시기이다. 어찌 보면 수능 시험 자체가 지금의 형태로는 치러지기 힘들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교육이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되는 것은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니다. 오프라인 만남이 없는 온라인 교육은 한계가 명확하기에 그에 걸맞은 밀도나 농도를 논의하고 대안을 찾으면 된다. 오히려 코로나19가 허락하지 않는 것은 10대를 저당 잡혀 한날 한시에 거의 모든 학생들이 모여서 치르는 시험이 인생을 결정하는 이 시스템이다.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면, 바로 입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체계와 결별해야 할 것이다.

 

*작성: 우돌_조영선(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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