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우리가 해냈어!”
인권교육 현장을 풍부하게 만드는 힘

첫 살짝쿵을 시작하며

2월부터 상임 활동을 시작했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교육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정작 진행해본 교육은 손에 꼽았다. 그런 와중에 [인권교육 살짝쿵] 작성 차례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첫 살짝쿵만큼은 기쁘고 설레는 마음에 풍덩 해서 쓰고 싶은데 딱 ‘여기다!’ 싶은 교육을 만나지 못해서 초조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내 머릿속에선 분명 흐름도 완벽했는데 왜 교육이 끝나고 나면 찜찜하고 아쉽기만 한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해 남 탓을 하기도, 내 탓을 하기도 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장애 인권 강사 양성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분들과 함께하는 교육에서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무엇에 집착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어 개운한 이 마음을 나누고 싶다.

 

참여자들이 나눠준 이야기

인권과 존엄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내가 어떨 때 분노하는지, 나의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지 알아보고 그 이야기를 인권의 언어로 엮어내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자분들은 기다렸다는 듯 엄청난 적극성으로 여러 이야기를 가득 적어낸 포스트잇을 내밀었다.

교육 참여자들이 어떨 때 분노하는지 적은 포스트잇 꾸러미

나는 무엇이든 못하는 대상으로 취급받을 때 분노한다.”

나는 정신장애인이 위험하다고 할 때 분노한다.”

나는 나를 보고 한숨을 쉴 때, 내 질문에 몰라도 돼 라고 무시할 때 분노한다.”

내가 열심히 무언가를 얘기하면 알아 알아 하면서 듣지 않을 때 분노한다.”

나는 청각장애인이라 나중에~“하면서 선택권을 생략하고 넘어갈 때 분노한다.”

 

대부분 참여자의 이야기 속에는 ‘무시’라는 단어가 숨어있었다. 원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인권의 여러 싸움에 대한 설명으로 풀어나갈 생각이었는데 키워드가 한 곳에 모이니 당황했다. 당황을 잠시 치워두고 찬찬히 읽어보니 ‘왜 많은 이들이 무시당한 순간을 떠올렸을까? 그 순간은 모두 같은 ‘무시’를 다루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참여자들에게 왜 그 순간에 분노했는지, 어떤 순간이었는지 이야기를 더 청해 듣고 나니 무시당했다는 감각은 여러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알게 됐다. 무시 속에는 불평등한 대우, 부당한 명령에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권력이나 구조, 나를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지나쳐버리는 순간, 나의 고유성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 외면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인권을 설명할 때 ‘인권이란 00과의 싸움이다.’라는 문장을 채우면서 설명하기도 한다. 00 안에 들어가는 것들은 매우 다양하다. 이날에는 우리가 온갖 무시와 싸워왔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게 되었다. 참여자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장애 유형이 달라 그런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다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우리가 해냈어!

교육안에서 인권교육의 가치를 나누면서, ‘우리가 해냈어’라는 말을 소개했다. 교육이 끝나고 기억에 남는 문장이나 새로 발견한 인권의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한 참여자가 “우리가 해냈어!”라고 외쳤다.

인권교육의 가치에 대한 설명이 담긴 피피티 한 장면

다른 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실 저는 오늘 너무 많은 부담을 안고 왔거든요. 인권운동사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해야 했나 싶더라고요. 근데 오늘 교육을 들으면서 인권이 무겁기만 한 게 아니라 이렇게 친근하고 내 옆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구나. 그래서 마음이 편해졌어요.”라고 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이전에는 인권교육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크게 없었는데 이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했다.

 

참여자들이 인권이 내 언어로 느껴지고, 인권교육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던 이유는 이 교육의 주인공은 그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여자들의 이야기와 힘이 이 교육을 풍부하게 채워줬고, 처음으로 후기를 나눠준 참여자의 말처럼 ‘우리’가 해낸 교육을 만들어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내 지난 교육엔 ‘우리’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잘 떠오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인권교육의 가치에 대해 강의하러 가면서도 정작 나는 그 가치를 놓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아! 그래서 늘 그렇게 찜찜했구나!

 

이제야 마음으로 느끼게 된 인권교육의 가치.

나는 지금까지 교육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나만을 생각했던 것 같다. 더 완벽한 준비에 매달리고, 준비한 내용을 다 못하거나 조금만 계획과 달라져도 속상해하고 교육을 ‘망쳤다.’라고 생각했다. 내 교육이 찜찜했던 이유는 내가 더 완벽하지 못해서, 경험이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교육에선 참여자를 초대하고,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교육 현장을 풍부하게 만드는 건 교육안만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에너지와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걸 듣고자 하지 않았으니 늘 어딘가 아쉬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상임 초반에 갔던 교육을 마치고 돌아가며 내 고민을 자주 들어주는 이에게 “나 오늘 교육 망친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진행도 깔끔하지 못했고 찝찝해. 나는 교육이랑 잘 안 맞는 걸까.” 했을 때 그는 “몇 번 가보지도 않고서 벌써 실수를 하나도 안 하길 바란 게 문제 아니야? 당연히 실수는 생기겠지. 애초에 완벽하게 끝날 거라고 생각한 게 오만하다 얘”라고 했다. 그때는 정곡에 찔린 것 같기도, 억울하기도 했다. 물론 그이는 ‘너 같은 신입이 벌써 무슨 완벽을 논해’하는 이유로 오만하다 한 것이겠지만, 지금 돌아보면 오만하단 말은 맞았다. 내가 교육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내가 준비한 교육의 완성도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는 생각하는 것만큼 오만한 생각이 또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얕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던 것도 같다. 나이가 ‘어린’ 여성 신입 활동가라는 나의 위치성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 참여자들에게 무시당하거나 평가의 대상이 되진 않을까 불안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편견을 깨주겠다며 힘이 잔뜩 들어간 교육을 준비해서 갔고, 그 안에 참여자들이 들어올 틈은 없었다. 무례한 사람을 만날까 두렵다는 이유로 애초에 사람이 들어올 틈이 없는 교육을 만든 꼴이 아닌가.

 

교육은 강사 한 사람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인권교육활동가는 그 공간의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교육은 참여자와 교육활동가, 우리가 함께 해내는 게 아닐까? 그러려면 좋은 참여자를 만나는 행운도 중요하지만, 참여자를 미리 판단하고 도망가지 않는 것, 교육 현장 안에 참여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환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해냈어!’ 정신을 잘 간직해서 앞으로는 더 틈이 있고, 나다운 교육에 대해 고민해야겠다. 이제 한 걸음 뗀 기분이다. 좋은 참여자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선물 받은 덕에 다음 교육이 설레고, 기다려진다. 다음에는 좀 더 여유가 있는 시간을 꾸려나가고 싶다.

글쓴이 : 연잎(박지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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