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질문을 긍정적으로 했으면 ‘아이 낳는 천사’라고 표현할 수도 있잖아요”
- 교육가의 자세에 대한 고민과 깨달음을 준 참여자들과의 만남

<빛나지 않는 별, 차별> 반차별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먼저 서로의 마음을 열기 위해여 <내 몸안의 한글자로 된 것 찾기!> 눈, 코, 입…. 각 모둠별로 찾아 보았다. 작전상 모두 찾았을법한 것부터 부르기 시작했고 이어서 다른 모둠에서 찾지 못했을 것 같은 글자들을 불러 주셨다. 위, 장, 간…. 어떤 분이 ‘변’하고 웃으며 말하자 같은 모둠 다른 분이 ‘이런건 창피해하면 안돼’라고 하셨다. 질, 냉, 한, 화, 정…. 이제 슬슬 다른 모둠에서 찾지 못한 것들이 나오자 서로 아!?~ 하고 감탄을 하시며 단어찾기 게임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때로는 너무 익숙하게, 어떤때는 부끄러워하며, 어떤것은 ‘이것도 찾았다!’하고 당당하게, 어떤것은 ‘이걸 말해도 될까?’ 주변을 살피며… 이런 다양한 감정들은 대체 어떤 경험들에서 생겨났을까? ‘다름을 인정하면 차별이 사라질까?’ 오늘 나누려는 이야기가 이러한 다양한 감각들에 대한 것임을 알려드리며 오늘의 주제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우리 사회는 어떤 기준들을 정하고 있으며 정해진 규범들은 어떤 사람들을 배제시키고 있을까? ‘기준’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을 초대해 보는 “연결을 꿈꾸는 초대장” 활동을 준비했다.

[가족이지만 가족같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 / 한국인임을 의심받는 사람들의 모임  / 집없는 사람들의 모임 / 여성,남성임을 의심받는 사람들의 모임]

사진: 가족이지만 가족같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 한국인임을 의심받는 사람들의 모임 결과물입니다사진: 집없는 사람들의 모임, 여성/남성임을 의심받는 사람들의 모임 토론결과물 사진입니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어 있네요”

어떤 활동인지 설명하기 위하여 예시로 다른 곳에서 활동했던 “나는 기계가 아니야! 영혼있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 사진을 보여드렸다.  그러자 한 참여자가 “질문자체가 잘못되어 있네요”라는 하셨다. 사진 속에 있던 ‘나는 아이 낳는 기계가 아니야!’라고 적힌 예시 자료를 보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떤 점이 왜 불편하셨는지 묻자 질문을 부정적으로 했기 때문에 ‘아이 낳는 기계가 아니야!’라고 적었다는 것이다. 만약 질문을 긍정적으로 했더라면 ‘아이를 낳는 천사’로 생각했을텐데, 부정적인 질문이 부정적인 표현을 낳았다는 것이다.

‘차별을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또는 ‘긍정적으로 표현한다고 차별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차별은 단지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일단 다른 참여자들에게 ‘난 아이를 낳는 기계가 아니야’라고 외쳤던 사람은 어떤 요구를 받았을지 물으니 여성 참여자들 중에서 아이를 낳는 시기부터 아기의 성별까지 요구받았던 다양한 경험들을 나누어 주셨다. 우리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을 통해 억압되거나 배제되고 있는 다양한 존재와 상황을 떠올려 우리 모두의 경험안으로 초대해 보려 했던 이 활동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드린 후 활동을 시작해 보았으나 ‘아기 낳는 천사’라는 말이 맴돌아 나의 기운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둠에서도 “한국인임을 의심받는 사람들의 모임” 제목에 관한 토론이 이어졌을 뿐 초대할 사람들을 전지에 적어주지 못했다. 기운이 바닥에 떨어진 것은 나 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여긴 ‘사람’들의 모임이잖아요”

‘집’ 없는 사람들의 모임에 초대할 사람들을 떠올리던 모둠 가운데 토론이 벌어졌다. 한 분이 길고양이와 강아지를 적어주신 것이다. 그러자 다른 분이 “여긴 ‘사람들’의 모임이잖아요”라고 했다. 순간 나는 내게 동물을 적어야하냐, 말아야하냐에 대한 해답을 물을까봐 긴장되었다. 집 없는 ‘사람’들의 모임에 동물을 포함 시킬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 보도록 권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프랑스는 인정이 됐나요?”

‘20년을 함께 살아온 비혼 커플, 동반자가 응급실에 가게 될 경우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과 ‘평생을 함께 산 반려동물의 장례식에 휴가조차 낼 수 없는 경우’를 떠올리며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와 사회가 인정하고 있는 가족의 범위를 나누는 도중 한 분이 “프랑스에서는 인정되나요?”하고 대뜸 물으셨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순간 당황하고 난감해 했다. 프랑스의 제도를 알려드리는 것도 좋지만 사실 이 시간은 우리 사회의 문제적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 가면 좋을지에 대한 우리의 지향점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러니 내가 모른다고 해서 당황하고 난감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위축되고 말았다. 결국 내가 준비한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아 자꾸 흐름이 끊겼다.

교육에서 나누는 이야기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너무 한쪽 이야기만 하는 거 아닌가요?” 처럼 인권에 반감을 가진 참여자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거나 오히려 교육가의 권력으로 상대를 눌러버리는 것도 아닌 교육가의 반응을 고민하게 된다. <인권교육 새로고침>에선 참여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탐색하는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이어가는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실제 막상 교육현장에서 이를 기억하고 실천하는 건 쉽지가 않다. 그래도 이렇게 적어놓고 기억해두면 다음엔 다른 반응을 고민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장면의 참여자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남성’이었다는게 마음에 걸린다.  의자에 뒤로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가도 떠오르는 질문들을 툭툭~ 불쑥 내뱉을 수 있는 것. 남성인 참여자와 여성인 나 사이에 어떤 힘이 작동하는 걸까? 예상치 못한 젠더 권력이 교육현장에서조차 있는 것일까? 근거없는 기준이 차별을 만들었듯이 교육가로서 어떤 기준이 나를 평가했고 또 무엇이나를 위축시켰을까?

사회가 정해준 기준에 나를 올가매지 않으면서 교육가로서 내가 조금 더 갖추어가야 할 점들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에 잠겼다. 한참 생각 끝에 작은 깨달음이 하나 있었다. 우리 사회의 차별의 경험들은 모두 같지 않다. 경험해 보지 않았더라도 모두 공감할거라는 것은 나의 위험한 착각이었다. 때로는 일부러 공감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공감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이 모든 경우를 지금 이 교육장에서 같은 공감과 깨달음으로 이어지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현장에서 부딪히게 되는 부분이 있다 해도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질문을 되돌려 줄 필요가 있으며, 함께 고민해 보기를 권할 수 있어야 했다. 정답을 말하지 못했다해도 사회가 정해준 나의 할당된 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감각을 키워가야겠다는 것을 나를 한껏 위축시킨 참여자들로부터 깨달음을 얻었다.

*글쓴이 :  지나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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