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잎의 방구석 영화관] “je m’appelle Michael(내 이름은 미카엘이야)”
영화 '톰보이'에 대한 후기

| 연재를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잘 다듬어진 보고서나 강의안같은 글이 아닌, 조금 어설프더라도 편안한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에 ‘인권이 들썩들썩’ 팀에 합류한 들의 상임활동가 연잎입니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는 일상에 가까운 이야기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일상을 써야 재미있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다 제가 영화를 즐겨 보면서도 글로는 적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영화 얘기가 지겨워질 때까진 인권이 들썩들썩한 영화들을 소개하는 글을 써보기로 정했답니다.

제가 연재할 [연잎의 방구석 영화관]에 대해 잠시 소개를 드릴게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저는 집에서 영화보는 걸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소개될 영화들도 아마 상영 중인 영화보다는 제가 구독하고 있는 넷플릭스, 왓챠플레이나 네이버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영화가 대부분일 예정입니다. 영화의 한계와 의의를 평가하거나, 전체 스토리나 설정에 대한 평론의 형식보다는 제 마음을 들썩들썩하게 만든 장면 몇 가지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최대한 스포일러를 조심하며 담아볼게요!

| 이달의 영화

 5월에 소개할 영화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도 유명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 <톰보이>입니다. 영화의 제목인 ‘톰보이’는 영어권 국가에서 ‘남성스러운 10대 여성’을 주로 칭하는 단어라고 합니다.(단어의 의미는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네요..) 포스터 속 주인공이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 예상이 가시나요? 영화는 프랑스의 여름, 한 가족이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오고 난 후에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10살인 주인공은 이사간 동네의 이웃인 리사에게 자신을 미카엘이라고 소개합니다. 미카엘은 파란색을 좋아하고, 끝내주는 축구 실력과 유난히 잘 어울리는 짧은 머리를 가졌습니다. 리사와 빠르게 가까워지는 미카엘에겐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영화는 미카엘의 비밀과 마음을 세심하게 보여주되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갑니다. 미카엘의 비밀이 알려질까 조마조마하던 마음은 마지막 순간에 긴 여운을 남기고 갑니다.

영화 톰보이의 포스터. 나시를 입은 주인공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2011년에 개봉했던 <톰보이>는 올해 5월 14일에 한국에서 다시 개봉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흥미가 생기신다면 보러 가시길 추천합니다.

| Scene 1

빨간 바지만 입은 미카엘이 상체를 드러낸 다른 아이들과 함께 축구하며 노는 모습

처음으로 소개할 씬은 미카엘이 동네 아이들과 축구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미카엘이 제공한 정보는 이름, 머리모양, 옷차림, 말투와 행동 뿐이었는데 자연스럽게 모두가 그를 남자로 인식하고, 리사는 끼워주지 않는 축구에 미카엘은 끼워줍니다. 축구 실력을 뽐내며 뛰어다니는 순간에 미카엘이 짓는 표정에서 그가 품은 이야기가 드러납니다. 미카엘의 ‘진짜 성별’을 궁금해하고 있을 관객들에게 영화는 그에 대한 답 대신 미카엘이 축구할 때 어떤 표정인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미카엘이란 사람을 알아가기에 이름이나 성별 따위보다 더 중요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을 것들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이 장면이야말로 미카엘과 가까이 만나게 합니다.

| Scene 2

빨간 삼각 수영복을 입은 미카엘과 검은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리사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수영하러 간 모습

두 번째 씬은 미카엘과 리사가 다른 동네 아이들과 함께 수영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볼 때 아무도 등장인물의 성별을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머리와 수영복의 모양만으로 누군가의 성별을 자연스럽게 파악했음을 자각한 순간 너무 어색했습니다. 사람을 구분하는 성별이란 기준이 얼마나 모호한 표상들로 구성돼있는지, 그 표상들이 어떻게 성 구분을 만들어내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어떤 이들은 수영하러 가기 전 미카엘의 어떤 준비들을 보며 미카엘이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이 장면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미카엘의 자기표현을 ‘거짓말’로 여기는 순간, 미카엘은 부자연스럽게 남성성을 흉내낸 모습,  다른 이들은 흉내내지 않아도 갖고 있는 본연의 모습을 한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의 인물 중에 젠더 수행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은 인물은 없을 겁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 어떤 모습, 어떤 상징들을 흉내내며 살고 있지 않나요? 사진 속 리사나 다른 남자 아이들에게도 어떤 흉내들이 있을 겁니다. 제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즈음 찍은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사진을 보았을 때의 당황스러움-“내가 이런 머리를 했다고?? 근데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이 생각납니다. 돌고 돌아 지금은 다시 짧은 머리를 하고 있지만 긴 머리가 당연한 건 줄 알았던 때도 있었는데, 그 당연함의 감각은 어디서 온걸까요?

 | Scene 3

*마지막 씬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이미지는 넣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미카엘이 리사를 보러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미카엘이 비밀을 들킬까 두려워하던 순간보다도 더 마음이 쿵 내려앉았던 기억이 납니다. 리사를 만나러 가는 미카엘의 모습에서 그가 미카엘로서 존재할 수 있던 시간이 얼마나 편안한 시간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수많은 ‘어린’ 존재의 자기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순간이 모여 어떻게 그들을 여성과 남성으로 길러내는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부모의 태도도 인상적입니다. 주인공의 옷, 머리, 놀이, 몸짓에 대해 ‘아이’의 취향 정도로 생각하던 부모는 그가 이 자기표현들에 ‘미카엘’이란 이름을 붙인 순간 돌변합니다. 현실에서도 아동의 자기표현은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방황이나 장난으로 치부해서 관심을 두지 않다가 어떤 순간에는 쉽게 개입해서 자기표현을 검열합니다. 미카엘도 그렇게 ‘로레’라는 이름의 자리로 돌려보내집니다.

| 톰보이를 보내며

평소엔 빠른 호흡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톰보이는 느린 호흡이기에 주인공의 감정이 섬세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차분하고 느린 호흡으로 진행되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톰보이를 다 보고나면 성별 구분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사실은 그렇게 선명한 구분선은 없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미카엘 혹은 로레가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며,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놀이를 하며 주변 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랍니다. 그와 함께 읽고 싶은 문장이 떠올라 여기에 적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주어져 있는 정체성의 규정요소들, 예컨대 국적이나 출신 계급이나 인종이나 성별, 심지어 언어와 문화는 개인의 정체성 서사에 통합되는 한에서만 중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연하고 부수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의 핵이 더 이상 이런 요소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바탕으로 정체성 서사를 써나가는 주체의 저자성 자체임을 뜻한다.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 내용(“나는 레즈비언이다”)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이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중에서]

자기 서사를 써내려가고 있을 미카엘의 시간을 응원히며 톰보이 소개를 마칩니다.

*글 내용에 관한 의견이나 정보 정정, 다음 영화 추천 등은 hojadeloto34@gmail.com 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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