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사례토론을 활용한 인권교육의 새로고침

교육 요청을 받게 되면 매번 하게 되는 고민입니다. 어떤 인권교육을 누구와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가르침과 배움의 이분법을 넘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고민하게 되지요. 인권에 대한 교육을 인권을 통해서 교육하려는 마음으로 준비할 때 강의식 방법만으로 가는 것이 자칫 교육가의 메시지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게 될까 우려되기에 참여형 교육활동을 떠올리게 됩니다. 참여형 교육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것들을 택하는 동기는 참여자의 경험을 끌어들여 변화하고 성장하는 교육을 만들고자 함이지요.

참여형 방법 중에서 사례토론 방식을 종종 활용하는데 어떤 사례를 가지고 무슨 프로그램으로 설계하느냐에 따라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방향이나 참여자의 강화되는 역량의 내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사례토론 방식 중에서도 상황극 방식을 택하기도 하는데 이는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참여자의 서사를 어떻게 교육의 무대로 초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프로그램입니다.

사례토론 방법을 활용하면서 고민에 빠진 분들에게서 <들>에 자신들의 사례 활용 방식의 점검을 요청을 해왔습니다. 이 요청을 받고 사례토론에 대해 고민하며 특히 인권교육에서 이 방식을 쓰는 목적, 그에 맞는 사례 구성 및 징검다리 질문이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상황극을 활용할 때, 서사를 구성할 때, 서사를 파악하기 위한 징검다리 질문을 만들 때 살펴야할 점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상황극의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

각각의 지향과 목적에 따라 사례를 가지고 진행하는 참여 방법의 선택이 달라지게 됩니다. 각 방법이 가진 철학과 교육 목표를 가지고 사용해야 함에도 간혹 사례토론이라는 형식을 활용했지만 이 교육의 목표가 인권교육인가 의문이 드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교육목적에 따라서 상황극의 사례 구성도 다르고 풀어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점검을 요청해오신 곳에서 사용한 방법 중에는 참여자들을 상황 속으로 생생하게 초대하여 토론을 하는 <문제적 인간을 소환>한 상황극이었는데, 문제적 인간을 향해서 조목조목 따지고 구체적 정책방안 등을 제시하는 대응 장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논리반박을 잘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 것이 문제는 물론 아닙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이보다 좋은 것이 없겠지요. 하지만 사실 문제를 해결할 주체를 불러내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다면 인권교육으로 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인권교육에서 이 방식은 연극적으로 구현된 현실 속으로 참여자들을 빠져들게 하여 인권침해 상황을 직접 경험 혹은 목격하게 해줍니다. 문제적 인간에 대해 참여자들이 대응논리를 펼치는 방식인데, 이 경우에는 논의를 풍성하게 하는 질문을 미리 많이 주기보다는 일단 참여자들이 상황에 참여함으로써 발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중간에 교육진행자가 개입해 질문을 경우도 있는데, 이 질문은 논리의 갑론을박에 빠지지 않고 인권적 쟁점을 놓치지 않게 하는 역할을 위한 것입니다. 대응하는 장면이 끝나면 교육진행자는 어떤 논리의 대응이 어려웠는지 참여자들에게 질문합니다. 이때 질문은 참여자들에게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대응논리가 빈약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주며,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우리들이 얼마나 깊이 빠져있는가를 확인하게 해 줍니다.

상황극이 끝나고 나고 대응이 어려웠던 점을 수정하여, 그 상황에 직접 맞서 새롭게 대처하는 ‘변화를 위한 리허설’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상황극에서 사회적 약자·소수자가 되어 대응해보는 훈련이 되기도 하고, 때론 과거의 경험했음직한 장면에서 속으로만 삼켰던 자신의 목소리를 내서 현장에서 힘을 키울 수 있게 역량강화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러게 진행하는 이유는 인권교육은 소수자 또는 사회적 약자의 권한 강화를 목표로 하기에 이 활동을 통해서 기존의 가치에 젖어서 갖게 된 왜곡된 서사를 인권의 관점에 기초한 새로운 서사로 재구성하는 전환의 계기를 열고자하기 때문입니다.

 

목소리박물관에서 서사의 선택과 구성을 어떻게?

<목소리박물관>이란 프로그램은 몇 년 전부터 활용해온 방법입니다. <들>의 활동가들이 이 사회에서 목소리가 가리워진 사람들의 구술기록에 참여 한 것이 계기가 되어, 기록의 일부분을 참여자들과 나누며 목소리 주인공이 누구일지 상상해보는 활동입니다. 다만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답’을 맞추는 것이 목표가 아님을 강조하며, 이런 상황을 경험했음직한 다양한 존재들을 떠올려 달라고 합니다. 시간이 좀 더 있을 때는 상상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살면서 경험했음직한 인권 침해가 무엇일지 논의하고 정지 장면으로 구성해보기도 합니다. 목소리박물관을 활용하는 가장 큰 장점은 서사적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차별받는 상황의 목소리에서 나의 삶, 혹은 또 다른 타인의 삶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아래의 서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소리>

우릴 그냥 평범하게 봐줬으면 좋겠는데… 왜 계속 쳐다보는 거 있잖아요. 그냥 한 번은 이상하면 쳐다볼 수 있는데 계속 쳐다보고…. 제가 도인이 아닌 이상 그런 시선에 대한 부담을 확 떨쳐버리지 못하는 거 같아요. 심각해지면 대인기피증이 생길 수도 있을 거 같더라고요.

직장에서는 몰라요. 제가 말을 안 하니까요. 왜냐하면 굳이 우리를 알린다고 그 사람들이 우릴 도와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일을 덜 할 것도 아닌데 선입견만 생기게 되잖아요.  

위의 <목소리>을 제시했을 때 사람들은 다양한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떠올립니다. 눈에 보이게 드러나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 성소수자, 임신초기의 여성 직장인, 사람들이 기피하는 병을 가진 사람들, 등등 다양하게 나옵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된 사회적 위치와 마음을 살펴봅니다. 반면에 교육에 적합한 서사를 찾거나 구성할 때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구체적으로 묘사가 되면 그이가 경험한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켜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음직한 다른 존재들과의 ‘연결’을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그 연결의 발견을 통해서 차별을 낳은 구조적 문제를 찾아내기도 힘들고요. 또한 구체적으로 서술된 인권침해 상황으로 인해서 문제 자체에 집중시키고 인권침해의 전조와 이후의 상황에 대한 서사적 상상력을 주기 어렵습니다.

차별의 매커니즘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경험한 차별은 그 자체로 고유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존재들이 경험하는 차별의 맥락과 연결됩니다. 목소리박물관을 통해서 바로 이렇게 누가 주인공인가에 빠지기보다 우리가 어떤 ‘연결’을 추구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육을 준비할 때 구술 기록의 어떤 부분을 발췌할까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사자의 목소리 자체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그 목소리가 연상시키는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교육 현장에 초대할 수 있는 서사를 선택한다면 인권교육이 더 넓고, 풍부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인권적 상상력에 ‘징검다리’ 놓아주는 질문은?

모든 교육에서 생각과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질문이 중요합니다. 특히 사례토론에서 징검다리 질문은 당장의 눈앞의 서사에 갇히지 않고 더 넓고 깊게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야말로 ‘징검다리’ 역할을 해줍니다. 그렇다면 <들>은 어떤 징검다리 질문을 주로 던지고 있을까요?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례 분석을 위한 징검다리 질문들
  1. 주인공의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주인공에게 이 사건은 어떤 의미인가?
  2. 이 상황이 방치될 경우, 나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되는가?
  3. 인권의 관점에서 다른 접근법은 없는가? 더불어 인권의 관점에서 변화해야 할 환경은 무엇인가?

징검다리 질문을 구성할 때 보통 대안이나 해결책, 구체적으로 필요한 권리 같은 것을 찾도록 넣지 않으려 합니다. 왜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묻게 되지 않나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실상 인권침해에서 사람들은 답을 모르거나 해결방안을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겪고 있는 게 인권침해인지 모르거나, 인권침해라고 했을 때 해결방안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도 그걸 요구할 수 없게 하는 환경 때문에 침묵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학생인권교육을 갔을 때 학생들에게 학생인권조례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으로는 참여자들의 인권의식이나 주체적 해결을 향한 권한 강화가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 방법만을 알게 될 때 더 힘이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따라서 징검다리 질문은 구체적인 해결방안, 권리 등의 정답을 찾는 것보다 사례에 등장한 사람이 처한 맥락에 대한 이해를 우선의 목표로 삼아왔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해결책 찾는 토론도 필요하지만, 인권교육에선 문제의 원인과 환경을 찾아보도록 함으로써 개인의 탓으로 귀결되었던 것에서 구조적 문제를 발견하는 힘을 키우고, 환경에 어떤 전환이 필요한가를 떠올리는 것에 목적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해법보단 새로운 인식과 전환을 위하여!

여러분은 교육에서 참여형의 어떤 방법을 택해왔나요? 그 프로그램이 참여자들의 인권감수성을 높이고 권한강화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나요? 부족했다면 어떤 점을 바꿔보면 좋을까요? 무엇을 어떤식으로 바꾸어보던지 기억할 것은 인권교육의 목표는 구체적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참여자가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인식을 하고 변화를 위한 전환의 관점을 갖게 하는 것, 연결된 존재를 발견하여 손을 잡는 연대의 힘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 목적을 기억하며 각자의 방법론으로 인권교육의 씨실과 날실을 엮어가 보아요.

 

글쓴이 : 정주연(루트),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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