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노동이 권리가 되려면 노동조건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장애인보호작업장 교육 후기

몇 해 전 발달장애인 부모를 인터뷰하는 일에 참여했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기로 접어드는 자녀를 두고 있던 김OO 님은 아들이 전공과에 입학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전공과는 장애인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진학하는 교육과정으로 김OO 님은 아들이 그곳에서 전문적인 직업훈련 과정을 배워 취업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진학이 어려워지자 김OO 님은 막막해하면서도 웃으며 말씀하셨다. “갈 만한 데가 있나 찾아봐야죠.” 아이의 장애를 알고 난 후 늘 그래왔듯 그건 항상 엄마의 몫이었기에, 그이는 지금까지처럼 부지런히 알아볼 것이다.

직업을 갖는다는 것, 일을 한다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 이상의 행위이다. 한 사람이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고 새롭게 자신을 구성해가는 과정이자 결과라 할 수 있다. 장애인들도 노동 혹은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참여를 통해 자기 삶을 자유롭게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는 하지만, 현실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12월 말 현재 우리나라 등록장애인 수는 2,586천여 명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15세 이상의 장애인은 923천여 명(37%) 뿐이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경증 장애인 경제활동참가율(43.9%)의 절반(22.1%) 정도다. (출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2018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 취업자의 직종이나 급여 등 노동조건을 살피면 그 열악함은 더하다. 그럼에도 그이는 꼭 아들이 취업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이가 바랐던 것은 ‘직업’이 아니다. 직장이든 어떤 모임이든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기회와 공공의 장을 찾고 있었다.

일을 더 오래 하고 싶은 이유

천안에 위치한 한 장애인 보호작업장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일을 더 오래 했으면 좋겠어요.”라는 참여자의 바람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었다. 이 공간 안에서는 서로 존중하/받고 있다는 느낌, 일이 끝나고 나면 집 외에는 할 일이나 갈 곳이 마땅치 않은 현실, 최저임금에는 못 미치지만 내가 돈을 벌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성취감, 자부심 같은 것들…. 누구에게나 일터가 서로 존중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권친화적인 일터 만들기를 주제로 잡았다. 나는 노동자로서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지, 우리 일터는 일할 만한 즐겁고 안전한 공간인지 점검해보기로 했다. 교육전체 흐름은 우선 하루의 일과를 통해 노동시간이나 휴게시간 등 노동조건을 살피면서 노동과 관련한 권리들 짚어보기, 그리고 본 프로그램으로 일터에서 경험함직한 사례를 준비, 실제 어떻게 대응하는지 혹은 인권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모둠을 구성하여 나눠보기로 했다. 참여자 특성을 고려하여 진행은 주진행자와 보조진행자 2인으로 1팀을 구성했다. 질문이나 사례도 구체적이면서 복잡하지 않게 설정했다. ‘하루 휴게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라고 묻기보다는 ‘일 하다가 쉬기도 하죠? 언제 쉬나요? 쉴 때는 어디에 있나요? 쉴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나요?’라고 묻는 식이다.

사례는 일터에서 동료와의 관계, 작업장 내 성역할 및 규칙을 살필 수 있는 내용으로 준비했다. 참여자들과 사례를 나눌 때는 준비된 사례를 읽기보다는 진행자와 보조진행자가 각 모둠에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한 후 상황을 연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작업장 동료와의 관계를 다룬 사례는 저마다의 경험과 맞닿아 있어서인지 참여자들이 가장 관심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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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일터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업무의 목표치와 할당량이 정해져 있다. 목표치를 채우려니 관리자의 역할을 맡은 사람은 업무 속도가 늦은 사람에게 ‘똑바로 합시다.’, ‘정신 좀 차립시다.’라는 발언을 하고야 만다. 자기가 항상 이 말을 내뱉고 있다는 한 참여자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일을 잘 해내려고 이 말을 할 때의 마음과 지금 이 사례를 접하면서 느끼는 마음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일이 진행이 안되어 답답한 마음에 한 말이 타인에게 모욕감을 줄 수도 있고 폭력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 충격이면서도 그이는 좀 억울해 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인지,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는지에 대해 묻자 어떤 참여자는 할 일을 하지 않는 게 잘못이라고 선을 그었고, 어떤 이는 일을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장면을 재현하기도 했다. 목표량을 채워야 한다는 전제 혹은 작업장의 어떤 기준이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 장애인 보호작업장이라고 하지만 정해진 시간 내 얼마만큼의 생산을 달성해야 한다는 실적주의가 작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보호작업장이라 비장애인에 비해 목표량 자체가 적은 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그렇다보니 개인을 살필 여유는 사라지고 서로에게 규칙을 강조하게 된다. 함께 정한, 모두가 따라야 할 기준이기에 이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문제로 지목된다. 그러니 사례를 통해 짚어야 할 것은 상황에 대한 대응을 넘어 상황이 발생하는 맥락까지 살필 수 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일은 자신이 하고 싶은 종류인지 혹은 자신에게 맞는지, 작업량은 적합한지, 작업속도가 자신에게는 너무 무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업무 외 작업장에서 요구하는 일과 연관되어 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서도 나눌 때 일터가 인권친화적인 공간으로 변할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노동이 권리라면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노동조건이 재구성되어야 하지 않는가.”

지난 해 고용노동부의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에 참여하던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가 과도한 업무로 인해 사망한 일이 있었다. 이에 장애인 단체는 ‘권리중심-중증장애인 기준의 일자리’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비장애인‧실적 중심이 아닌 장애인도 즐겁게 노동하면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마련하라는 요구다.

지난 2009년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해 왔던 당사자들이 스스로 법에 따른 권리를 찾아 자립을 선택하면서, “사회복지가 권리라면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우리 사회에 물었다. 기존의 사회복지가 당사자의 필요와 욕구가 아니라 제공자의 입장에서 제공되었던 것에 대한 비판이었고, 권리에 기반 한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요청이었다. 노동 또한 권리라면 당사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당사자에게 맞는 노동조건으로 재구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기존의 기준들은 그대로 둔 채 비장애인에 비해 짧은 노동 시간, 단순 업무를 하는 것만으로 장애인 노동권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글쓴이| 묘랑(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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