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결손가정 애들을 먼저 조지는” 사회에서 자립을 상상한다는 것
- ‘보육시설 퇴소아동’과 만난 교육 후기

만 18세를 넘겨 보육시설에서 퇴소한 뒤 자립생활관에서 지내는 ‘청소년’* 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민법상 ‘성인’이지만 기관 종사자들에겐 “우리 애들”이라 불리는, “근데 또 다 큰 애들이니 담배 피는 거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분들입니다. ‘들’이 지난 5년간 활동했던 청소년자립지원사업 ‘자몽’ 모니터링 사업의 일환으로 배치된 교육이었습니다.

* 법률상 ‘보호종료아동’ 혹은 ‘보육시설 퇴소아동’으로 지칭되는 존재. 아동복지법상 ‘아동’은 만 18세 미만이고, 청소년기본법은 9세 이상 24세 이하를 청소년으로 규정함. 아동복지법상 만 18세가 넘어 퇴소한 ‘아동’의 자립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자립생활관이 현재 전국에 12개 있음.

이 기관은 시설 하면 으레 떠오르는 집단 수용이 아닌 ‘1인 1실’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일단 독방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 이 곳을 이용하는 존재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습니다.

기관 방문 때 기관장으로부터 들었던, “보육시설에서 온 애들이라 전자레인지에 뭐는 넣으면 안 되는지, 세탁기는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교사가 안 움직이면 하나도 스스로 안 하려고 한다”는 말이 교육을 통해 당사자의 관점과 언어로 재구성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보육원 출신이라 무기력하다는 기관장의 견해에 머무르지 않고 입소생들의 주체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는 실무자 선생님에게 힘을 실어드리고 싶은 기대도 있었습니다. “관리(운영)만 하려고 하면 편하다”고 고백했지만 자몽 사업과 네트워크 모임을 계기로 좀 더 의미있는 지원을 위해 고민하는 사업 담당자 분의 분투가 외롭게 끝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우리 반에 마리아랑 물망초가 둘 다 있네”

이 분들이 인권교육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화를 실무자와 사전에 나눈 적이 있습니다. 교육이 있기 얼마 전 국가인권위에서 시설 점검 차 기관에 방문하면서 대동한 교수가 있었다고 해요. 입소생과의 면담을 마친 뒤 “전국 자립생활관 중에 여기가 제일 센 것 같다”고 했대요. 이를 두고 실무자는 “우리 지역 특성이 있어서 애들이 좀 그렇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대화를 더 나누면서 입소생들의 그러한 반응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전에 보육시설에서 인권위에 신고한 적이 있는데 조사관이 와서는 원장과 차만 마시고 돌아갔다 하더라고요.” 인권위 시설 모니터링에 대동한 그 교수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말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없음이 그런 ‘센’ 행동으로 드러났을 것이란 발견을 함께 한 만큼, 이제 ‘인권’ 교육의 이름을 걸고 들어가는 강사에 대한 이분들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잘 필터링 할 것인가 과제가 주어진 것입니다.

사진: 교육에서 나눈 슬라이드 두 장이 옆으로 나란히 있음. 본문에서 언급한 내용. 왼쪽-"이들이 거리에 나온 이유는 청소년참정권이 보장되면 ooo한 현실 또한 바뀔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는 문장과 시위 장면. 오른쪽-<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와 "우리 반에 마리아랑 물망초 둘 다 있네" "“TV에서 불우이웃 결손가정 막 이러면 도와줄 것 같지? 근데 사실은 학교에서 지갑만 없어져도 결손가정 애들을 먼저 조진다고, 언니도 알잖아요.”문장이 겹쳐진 슬라이드

교육에는 20대 초반의 입소생 5명이 참여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옆에 앉은 실무자를 향해 “저 일하고 돌아와서 자러 갈랬는데 쌤이 얘기해서 이거 들으러 왔으니까 이따 밥 사주셔야 해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긴장도 됐는데요.

이들이 거리에 나온 이유는 청소년 참정권이 보장되면 ooo한 현실 또한 바뀔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만 비가시화되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하얀 천을 둘러쓴 퍼포먼스를 통해 외치는 장면을 보면서 지금 인권교육 시간이 ‘변화’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고 본인들의 목소리를 청해 듣고자 하는 점이라는 운을 깔고자 했습니다. “청소년들이 투표권 갖는 건 좋은데 정치인들이 다 썩어먹어서 안 돼요”라면서 어디선가 자주 들었던 정치인 비난을 이어가는 분이 있어서 잠시 당황했지만 어쨌든 반응을 해주시니 이 분위기를 얼른 잘 이어가야겠다 싶었습니다.

“TV에서 불우이웃 결손가정 막 이러면 도와줄 것 같지? 근데 사실은 학교에서 지갑만 없어져도 결손가정 애들을 먼저 조진다고, 언니도 알잖아요.”

마침 교육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동백꽃 필 무렵>)에 보육시설 출신이라 학교에서 부당한 의심을 받는 장면이 나와서 해당 장면을 들고 갔습니다. 드라마를 본 사람도 있어서 학급 내 도난 사건이 발생하자 교사로부터 제일 먼저 의심받는 장면을 두고 “야 이거 너 얘기다 너 얘기ㅋㅋㅋ”라는 반응이 나왔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화가 이어졌는데요. “문방구 아저씨 진짜 죽이고 싶었다. 내가 안 훔쳤는데 가게 물건 사라졌다고 학교 찾아와서 우리 반 담임한테 먼저 말하더라” 울분 섞인 경험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후원 전달식에 인증 사진을 찍는 장면에 나오는 어린이의 마음을 짐작해보는 질문, “수급자 주제에 어떻게 비싼 패딩을 입냐”로 사회적 논쟁이 됐던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가운데 인권의 눈으로 복지를 어떻게 말할 것인지 내용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이 아니어도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이 많으면 좋겠다”

참여자의 경험을 청해 듣는 본 활동 질문으로 가져간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1) 내 삶에 ~이 있다면/없다면 내 삶이 좀 더 자유로워질 것 같다. 2) ****(기관이름)은 나에게 ① 인생에서 지나가는 정류장 정도이다 ② 기댈 수 있는 관계도 있는 안식처 느낌이다. 왜냐하면~. 3) 우리에게 결정권이 있다면, ****에서 ooo을 바꾸거나 없애고 싶다.

사진: 참여자들이 포스트잇으로 적어준 내용. 1번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내 삶에 돈이 있다면 자유로워짐", "돈" "억압, 강요, 자유(어렸을때". 2번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유는 힘들때 선생님들한테 기댈 수 있고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다. 그래서 안식처 느낌이 든다." 3번 질문에 대한 답으로 "?" "없다"가 적혀 있음.
돌이켜보면 첫번째 질문에 나올 이야기를 연결하여 “나에게 필요한 지원정책은?” 느낌으로 이 분들의 경험과 요구를 더 들어볼 수 있는 질문을 준비해갈 걸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지금 있는 기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듣고자 하는 의도로 가져갔던 두 번째 질문과 그에 이어 기관에서 바꿔보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준비했던 세 번째 질문에 생각보다 활발한 반응이 나오지 않았거든요. 이번 교육 자리를 마련해준 실무자에 대한 신뢰를 표하면서 ‘기댈 관계가 있는 안식처’라고 적어준 참여자가 더 많기도 했고(그래서 실무자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교육 자리에 온 것이기도 하겠죠), “예전엔 안식처 느낌이었지만, 퇴소 예정일이 점점 다가오면서 자립 준비가 막막하니 더 지나가는 정류장 느낌이 든다” 얘기해준 분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활하는 공간에 대한 불편함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친구를 데려오는 것이나 외박 관련 규정”, “공간이 좁고 춥다” 와 같은 이야기는 나왔지만, “그래도 여기 사는 게 생활비를 아끼는 것이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였습니다. 교육에 동석했던 실무자가 빠졌는데도 반응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차피 규칙이 있는 거 알고 여기 들어온 거니까”라는 반응이 많았고, 퇴소와 함께 경제적 지원이 단절되는 것을 앞둔 이들 입장에서 “대학생이 아니어도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이 많으면 좋겠다”와 같이 지원 정책에 대한 불만이 더 나왔던 것이지요. 교육 시작할 때 “요즘 꽂혀 있는 고민”을 물었을 때 대부분 “취업”을 얘기했던 맥락, 내 삶에 필요한 것을 묻는 본 활동 첫 질문에 “꽃을 사고 싶은데 한정된 생활비 안에서 계산하다 보면 못 사게 된다”, “여기 와이파이가 있긴 한데 신호가 약해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쓰는데 그것도 돈이다”와 처럼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기에, 이들이 바라는 지원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더 충분히 듣고 어떤 변화들이 가능할지 상상해보는 시간이 교육에 더 충분히 배치되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인거죠.

‘청소년 탈시설’을 나눌 수 있는 교육

보육시설 혹은 시설화와 관련하여 지난해 12월에는 아동권리협약 30돌, 아동의 대안적 양육에 관한 가이드라인(원문보기) 채택 10돌을 맞아 유엔총회에서 아동의 권리에 관한 결의가 채택된 바 있습니다(관련 기사 링크). 이 결의문은 ‘시설 보호’가 아동의 성장과 발달에 잠재적인 해가 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에 비추어 시설을 대신할 가정 및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탈시설’의 방향성을 명확히 언급했습니다(결의문 링크).

최근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언론 보도 등 사회적 관심은 더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보육시설에 머무는 동안에는 보호와 안전의 명목으로 자율성을 제한받다가 만 18세가 되면 ‘자립’(퇴소)이란 이름으로 하루 아침에 스스로 살아남으란 요구에 직면하는 부당한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불쌍해서 혹은 탈선을 방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적절한 삶의 수준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차원에서 이뤄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시설이 당장 사라지거나 보호 종결 후 자립이라는 단선적이며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의 지원 체계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보호시설을 경험한 이들의 목소리가 좀 더 조직되어 사회적으로 들릴 필요가 있습니다.

‘장애인 탈시설’이란 의제가 불과 10년 전만 해도 허황된 소리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지원체계의 기본값으로 자리 잡게 된 것처럼, ‘청소년 탈시설’ 또한 사회적으로 더 의미있는 주장으로 자리잡아가는 여정에 이미 들어선 것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 것들 밥 잘 먹이고 학교 보내주면 충분하지’라거나 ‘밖은 위험하니 집이든 시설이든 들어가 보호받아야지’라는 서사를 넘어 독자적 인격체로서 청소년 주거권을 말할 수 있는 자리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시설 보호가 유일한 대안이 아니게 될 때, 지금 시설에서 청소년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 청소년에 대한 지원 정책에 균열이 생길 수 있겠지요. ‘관리’가 아닌 ‘인권’에 기반한 지원체계가 만들어지면 실무자들 또한 수치화된 성과 증명이 아니라 좀 더 보람있는 노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교육을 하는 우리는 보육시설 이용인(과 실무자)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들의 외침을 조직화된 목소리로 세상에 더 알리고 변화의 실마리들을 찾아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성: 날맹(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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