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뭉게뭉게 잡히지 않는 핵심 메시지를 여물게 하는 시간

이미지: 아픈몸을살다 책 표지와 위 본문 인용 문장이 포함됨.

“아팠지만 가장 좋았던 순간들에 나는 온전했다. 건강했지만 가장 나빴던 순간들에 나는 아팠다. 어느 곳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중에서

이 문장은 부산 청소년노동인권 활동가와 함께한 노동안전보건 워크숍(2019.11.30.~12.1.)에서 인용한 것이다. 교육의 흐름은 해치지 않으며 앞서 나눈 이야기와 잘 어울려 깊은 울림을 남기는 문장 하나가 간절할 때가 있다. 주로는 핵심 메시지를 간결한 문구로 준비하지만 어쩐지 밋밋하고 밍밍할 때, 그럴 때 인용 문장의 ‘권위’에 기대어 힘을 주고 싶어진다. 핵심 메시지를 수월하게 전달하는데 참여자의 눈도 반짝인다면 괜한 뿌듯함도 느낀다. 물론 핵심 메시지가 잘 벼려졌을 때 인용 문구도 빛을 발한다. 내가 잘 소화하지 못한 문장은 영락없이 맥이 빠지기 때문이다. 문구만 읽는다고 핵심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참여자의 반짝이는 눈보다 의문부호를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글에서는 교육 주제를 정하고 핵심 메시지를 다듬어 여물게 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만나는 고민과 인식의 전환에 대해 나누려 한다.

주제와 핵심 메시지 정하기

2011년 광주 기아 자동차 현장실습 중 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현장실습 전 노동 안전 교육을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2012년부터 산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가는 직업계고 학생은 <산업안전보건과 근로기준법>이라는 제목의 15차시(차시는 연도별 다름) 온라인 교육을 들어야 한다. 클릭 몇 번만으로 수료가 되는 형식적인 교육의 문제점을 말해왔지만, 현재까지 그 내용과 형식에 큰 변화가 없다. 청소년을 만나는 노동인권 교육활동가도 여러 이유로 노동재해 보상 위주로 다루고 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껴 워크숍을 준비했다. 2018년 하반기부터 준비한 내용으로 2019년 5월 말 이틀간 워크숍을 열었다. 5월 워크숍은 입문 과정 격으로 ‘건강’과 ‘안전’의 의미를 고민하는 시간으로 준비했다. 건강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안전의 의미와 이를 가로막는 문제, 누려야 할 권리 등을 들여다봤다. 안전과 건강이 어떻게 권리가 되어 왔는지 역사적 사건과 의미를 재조명해 보는 시간도 마련했다. 마무리는 앞서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뉴스를 분석하고 문제 상황에 맞서는 역량을 기르는 시간으로 채웠다.

이번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다른 워크숍에 비해 많은 자료를 찾아 읽은 것 같다. 일터의 안전 중심 사고에서 한발 나아가 건강과 안전을 둘러싼 여러 쟁점을 살피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준비팀과 토론하면서 워크숍에서 나눌 이야깃거리를 다듬고, 풀리지 않는 부분은 또 찾아 채우다 보니 워크숍에 대한 기대도 한껏 높아졌다. 하지만 어떤 주제는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다뤄야 할지 정하지 못해 헤맬 때가 많았다. 워크숍을 열 때까지 뭉게뭉게 피어오르기만 하고 ‘이거다’라고 하기 어려웠던 주제는 ‘건강’이었다. 건강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워크숍의 물꼬를 트고 싶었지만 바람과는 달리 쉽지 않았다. 주제로 훅 들어가기 전에 예열하는 시간은 뭐로 채울지, 마무리는 어떻게 할지 등 모든 게 쉽지 않았다.

여러 논의 끝에 건강의 의미를 재정의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의 건강 정의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WHO는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나 상해가 없다는 것에 끝나지 않고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안녕한 상태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1948년 WHO가 창립하면서 9개 조항으로 구성한 헌장을 공포했는데, 그 중 첫 번째 조항이 건강에 대한 정의 규정이었다. 현재의 정의는 공포 이후 논의를 거듭하며 범위가 확대된 결과다. 1957년에는 유전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주어진 조건에서 적절한 생체 기능을 나타내고 있는 상태로 건강을 정의했고, 1974년에는 건강의 질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이후 총체적 건강 정의가 대두되어 1998년 WHO 총회에서 ‘영적 안녕’을 기존의 건강 정의에 추가했다고 한다. 이런 변화를 살피고 우리의 생각을 덧대 재정의하는 과정까지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출발점과 재료는 찾았으나 핵심 메시지를 마련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 ‘평등해야 건강하다’, ‘기계가 아니라 관계를 통해 건강해진다’ 등으로 핵심 메시지를 추렸다. 활동을 통해 나온 이야기를 나눌 때는 ‘건강은 완벽한 상태 대(對) 질병 상태의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여러 가지 가치를 반영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누기로 했다. 우리는 건강과 불건강의 스펙트럼 속에 살고 있고, 완벽한 ‘건강 상태’라는 것이 마치 유토피아 같아 이를 쫓느라 배제하고 놓치는 것들을 나누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정리하는데 던(Dunn)의 건강-불건강 연속선 정의(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를 성취한 사람은 아주 드물며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안녕 상태를 서로 다르게 가지게 됨)는 많은 참고가 되었다.

 

핵심 메시지를 잘 나눌 수 있는 활동 마련

사진: 과제 안내가 적혀 있는 교육 슬라이드 캡처 이미지입니다.

사진: 항목별 활동예시.

 

핵심 메시지를 정한 후 톺아보는 방식도 고민이었다. ‘건강’으로 브레인스토밍 후 WHO 정의에 기반해 정리하는 방식을 할까 했는데, 모둠마다 나올 다양한 이야기를 짚고 묶어 내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진행자의 역량에 기대는 방식으로 해결하기엔 첫 워크숍이라 부담이 컸다. 고민 끝에 신체적/정신적/사회적/영적 건강으로 영역을 구분해 모둠별로 나눈 후 전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정했다. 영역마다 이야기를 나눌 때 건강과 불건강의 스펙트럼을 느껴보기 위해 건강/불건강 이분법으로 구분하여 접근해 보기로 했다. 이왕이면 대비되는 말을 찾아, 그렇게 대비되는 맥락과 효과에 대해서도 짚어보기로 했다. 주제에 따라 쟁점을 벼리는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이분법적 접근은 익숙하거나 흔히 접하는 생각을 모아 쟁점에 다가갈 때 도움이 된다. 또한, 이분법으로 딱 잘라 위치 짓기 어려운 것을 발견할 때 그것을 가르는 기준에 의문을 품게 하는 이점이 있다. 준비팀이 미리 해보면서 걱정한 부분은 ‘영적 건강’ 영역이었다. 참여자들이 어떻게 찾아줄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정신적 건강’ 영역과 어떻게 구분될까에 대해 의문이었다. 직접 해보니 구분되는 지점이 생각보다 잘 드러났다. 자신 있게 일단 준비한 대로 진행하고 워크숍 이후 좀 더 보완하기로 했다.

사진: 모둠토론 결과물 4장을 합친 이미지입니다.

사진: 영역별 모둠 활동 결과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사회적 건강, 영적 건강

 

건강-불건강 연속선 정의를 잘 나누기 위해 매일의 생활에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거나 통합적으로 접근하지 못해 일어나는 사례도 열심히 찾았다. 사례를 나눌 때는 적절한 대처를 가로막는 빈곤, 차별, 폭력, 노동환경 등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과 불평등의 문제 등을 핵심 메시지와 함께 짚었다. 참여자들이 나눠준 풍성한 이야기로 워크숍을 잘 마쳤지만, 건강의 의미를 재구성하기 위한 질문을 잘 던졌는지, 사례는 적절했는지 자신이 없었다. 끝나고 나면 늘 아쉽기 마련이어서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물음으로 다가온 이야기가 남아 더 그랬던 것 같다.

 

남은 질문으로 더 여무는 핵심 메시지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과 불평등 문제를 이야기할 때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 있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것’이라며 건강을 강조하는 말들이 놓치는 것을 제대로 못 나눈 것 같았다. ‘아픈 몸’이 살아갈 자리를 싹 없애버리는 섬뜩함마저 느끼게 하는 이런 문구를 덕담처럼 읊어댔던 기억도 떠올랐다. 이미 주변에서 여러 경로로 이야기를 듣고 지냈을 텐데 ‘아픈 몸’으로 건강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잘 잡히지 않았다. 진단명을 받거나 질병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아픈 몸’을 사는 사람은 WHO가 정의하는 ‘질병이나 상해가 없는 것에 끝나지 않고 두루 안녕한 상태’를 통합적으로 짚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질병명을 받기 전이나 후나 ‘아픈 몸’으로 ‘안녕’한 상태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질병명을 받기 전까지 ‘아프다’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고, ‘아프다’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제대로 쉼을 보장받기 어렵지만, 의료전문가에 기대어 ‘아프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건강과 불건강의 스펙트럼 속에서 ‘안녕’한 상태를 이어갈 수 있을까, 또, 이는 선택의 문제일까…. 하는 것이다.

5월 첫 워크숍을 마치고 다음 워크숍 기회가 11월 말에 있었다. 7월에는 들 활동 회원과 함께 교육 나눔을 하는 시간도 있었다. 11월 워크숍까지 기회가 될 때마다 위 물음을 안고 자료를 찾거나 문제의식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조한진희가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던지는 문제의식은 많은 참고가 되었다. “건강권이란 말 그대로 건강할 권리를 의미하며, 아픈 사람이 치료받을 권리도 포함한다. 그럼에도 나는 ‘아플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우리 현실을 강조하고 싶어서 질병권(疾病權)이라는 이상한 말을 쓰곤 하는 것이다.”(인용글 링크)

WHO의 정의,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나 상해가 없다는 것에 끝나지 않고’는 전제라기보다 통합적인 접근을 고려해야 한다고 나누긴 했다. 하지만 좀 더 인식을 확장하기 위해 덧붙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잘 잡히지 않던 터에 발견한 소중한 이야기였다. 첫 번째 워크숍을 준비하기 전 접했던 문장이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큰 울림으로 오지는 않았다. 아서 프랭크가 <아픈 몸을 살다>에서 던졌던 문제의식(회복이 질병의 이상적인 결말이라는 생각에 문제제기하며, 회복보다 ‘새롭게 되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도 마찬가지였다. 아서 프랭크가 자신의 경험을 오롯하게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감탄해 마지않으며 그간 통과했던 통증의 시간을 잠시 떠올릴 뿐이었다. 지금 끙끙대며 부여잡고 있던 문제의식과 그때는 잘 만나지 못했다.

어깨 통증과 함께 두 번째 워크숍을 준비해서인지 보충할 자료를 찾는 동안 어떤 자료에서는 한동안 머물곤 했다. 꽂히는 문장과 이야기마다 활용하고 싶어 넣고 빼고를 반복하던 중 마지막까지 꼭 쥐고 있다가 추가한 문장은 서두에 언급한 문장이다. 이 문장의 쓰임은 매우 훌륭했다. 자료로써도 훌륭했지만, 나 자신이 통과하고 있는 시간 역시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능동적 환자, 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진단명에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건강과 불건강의 스펙트럼 속에 사는 나를 의식하며 어느 한쪽에 머무는 이분법적인 삶이 아닌, 신기루 같은 최고 상태를 쫓는 삶이 아닌, 질병을 안은 채 일상이 단절되지 않고 살아가는 삶에 더 관심을 두는 태도로 전환한 것 같았다.

같은 주제로 여러 참여자를 만나 나누는 동안 핵심 메시지가 더 잘 여문 셈이다. 이는 단지 한 문장을 추가한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 내가 통과하고 있는 시간을 잘 이해하는 값진 경험까지 선물했다.

*작성: 수정_이갈리아(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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