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일상을 평등을 향한 출발점으로 만들자
-○○특권목록을 통해 살펴보는 차별의 풍경

“일상에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어린이, 청소년을 지원하는 기관 종사자 교육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해보고자 던졌던 질문입니다. 어린이, 청소년의 경우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스스로의 결정에 더해 누군가의 허락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참여자들은 업무 상 상사나 상급기관에 허가 요청을 했던 일, 친구들과 숙박을 포함하는 여행을 갈 때 남편의 허락을 구했던 일, 주말이나 밤 외출을 위해 자녀들의 허락을 구했던 일 등을 떠올려 주었습니다. 경험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나누면서 허락은 동의나 협상과 달리 허락을 구하는 사람과 이를 승인하는 사람이 위계적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누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가의 측면에서 되짚어 보았습니다.
“허락이라기보다는 남편과 상의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 애가 고등학생인데 집회 가고 싶다고 했는데 못 가게 했지. 나는 가면서 누구한테 허락 안 맡는데…”
“어딜 가든 엄마한테 알리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사실 내가 허락을 안 하면 못 가지.”
배우자의 허락을 구한다고 했을 때 상호간의 관계에서 힘의 차이와 작동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논의가 일방적이기보다는 쌍방향적이었다는 점에서 상의였던 같다고 달리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구한 것은 허락이었을까요? 자녀들이 부모의 허락을 구할 때와 견주어 보니 허락의 외형을 띈 통보였음을 알아채기도 했습니다.

비청소년 남성으로, 해당 조직의 관리자이기도 한 참여자는 근래 누군가의 승낙을 구한 적이 없다면서 ‘신호등’을 떠올려 주었습니다. 신호등이 허락해야 출발할 수 있다고. 의외의 대답에 교육장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기도 했는데, 이 응답의 한편에는 결정에 있어 성, 나이, 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일상적으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윗사람의 동의나 허락을 구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사회질서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그 안에서 누군가의 권리는 고려되지 않거나 권리로 인식되지 않기도 합니다. ‘아직’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라고 여겨지거나 질서, 효율에 밀려나기도 합니다. 지금의 나에게 불편하지 않은 제도나 문화가 누군가에게는 권리실현의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감각, 반차별감수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특권,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정상적인 경험?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창비. 2019)에서는 이러한 ‘개인의 의도나 노력과 무관하게 펼쳐지는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정상적인 조건이자 경험’들이 특권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특권이라고 하면 아주 특별한 권리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자연스런 관행이나 일상적 문화들이 나와 다른 사회적 위치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일 때 이 역시 특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의 이야기처럼 비청소년들은 집회의 자유를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집회를 열거나 참여하기 위해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하는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그것은 특권일 수 있지 않을까요.

조너선 만은 “모든 제도는 명백히 그렇지 않다고 입증되지 않은 한 차별적일 거라고 간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사회의 제도는 물론 일상의 규율하는 관행이나 문화들이 차별적이지는 않은지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지난 11월 광주지역 인권교육활동가들과 함께 한 교육에서는 이러한 일상 속 특권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소개된 페기 매킨토시 교수의 남성특권목록을 살펴본 뒤,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특권들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모둠별 키워드는 “나이/비장애/국적‧원주민/이성애”로 가능한 자신의 삶의 경험들을 되짚어 특권목록을 길어올릴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의 목적이 사회적 약자들의 차별경험을 통해 문제를 짚기보다는 보통의 사람들의 삶이 차별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피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이 비장애
이성애 국적

참여자들이 찾아 준 4가지 특권목록에는 법, 제도적 문제부터 일상의 문화와 관행들이 두루 담겨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국적‧원주민특권목록은 특히 법, 제도적 차별과 결과적으로 그것이 야기하는 차별적 상황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는데요, 나온 이야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건강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다.
‣ 관공서에서 행정업무를 쉽게 볼 수 있다.
‣ 급식시간에 굶을 걱정을 하지 않는다.
‣ 나는 주민등록증이 있어 추방당할 걱정이 없다.
‣ 피부색이 다르다고 노골적인 시선을 받지 않는다.
‣ 직업선택 시 과거의 경력을 인정받는다.
‣ 태어나자마자 국적을 취득한다.
‣ 고등학교 진학이 쉽다.
‣ 나는 평상시에 모국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 야근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을 요구할 수 있다.
‣ 내 노력으로 승진할 수 있다.
‣ 부당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된다.
‣ 직장 이동이 자유롭다.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특별히 고민하거나 걱정해보지 않았을 출생 시 등록, 사는 곳에서의 추방, 급식문제나 경력인정, 노동환경과 관련하여 이주민들은 늘 두려움과 불안, 초조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생 시 등록이 되지 않으면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는 물론 권리주체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인 병원치료나 학교 교육은 물론 다양한 사회보장체계에서도 배제되어 각종 위험에 노출될 것이 뻔합니다. 임금 관련한 문제들은 법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지만 이주민이라는 취약한 위치로 인해 당당하게 요구하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법 자체가 차별적으로 설계되어 있기도 합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은 ‘사용자는 외국인근로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하여 처우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면서도 법률 내에 사업장 이동 제한이나 퇴직금의 출국 후 14일 이내로 정하는 등 내국인 노동자와 다른 규율을 적용함으로써 차별을 합법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산업안전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이주노동자 산재발생률은 한국인의 6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차별적 조치들이 두려움과 불안을 넘어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권에 대한 인식이 평등을 향한 출발점

국적‧원주민 특권목록을 발표한 모둠은 ‘처음엔 막막했는데 찾다보니 너무 많아서 나온 이야기를 다 정리하지 못했다’고 발표를 마무리 해 주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이주민들의 삶은 원주민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질서 속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원주민)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위의 목록들을 특권으로 인지하고 있을까요 혹은 인지할 수 있을까요? ‘보편적’으로 향유되어야 할 권리가 누군가를 예외로 두고 있는 지점을 우리가 포착할 수 있다면 그곳이 그리고 그것을 알아챈 한 사람 한 사람이 평등을 향한 출발점이지 않을까요.

나이, 비장애, 국적‧원주민, 이성애 외 우리 사회에 작동하는 다양한 기준들을 통한 특권목록들을 더해가면서 무수히 많은 평등을 향한 시작과 변화가 이어지기를 바래봅니다.

* 글쓴이 : 묘랑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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