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짓는사람+들] “자기를 받아들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 활동회원 숨(조서윤숙)님의 이야기입니다

한 청소년이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가서 주치의에게 질문을 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선생님 자존감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이에 대해 주치의는 “자존감을 높이는 건 다른 특별한 걸 하는 게 아니야. 나 자신을 잘 알게 되면 자존감은 높아진단다.”라고 말했다.

내가 만나고 있는 청소년들은 성착취를 경험했거나 어릴 때 가족으로부터의 방치를 경험한 이들이다. 그러한 경험들과 가족과의 단절 속에서 자책감을 키우면서도 자신의 삶에 체념하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주치의의 말과 연결하다보면 폭폭한 삶의 경험을 한 아이들에게 탓을 돌리는 사회 속에서는 아이들이 자신을 잘 아는 것도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도 미친 듯이 어려운 일이구나 깨닫게 된다.
자신을 잘 아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의 경험이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어떤 식으로 해석되어서 지금 자신의 어려움을 만들어내는지, 또 사람들과 어떤 패턴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고 이해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의 삶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스스로를 수용하는 과정 속에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아닐까 대화를 나눈 날이었다.

이날 함께한 청소년은 돌아오는 길에 내내 어렵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 맺는 지에 대해 탐구했다.

 

영화 윤희에게 포스터 이미지입니다.

그날 저녁, 또 한 명의 청소년인 조카와 함께 영화<윤희에게>를 보았다. 성적소수자인 윤희는 성적소수자로서 살아가는 일을 꿈도 꾸지 않는 듯 보인다. 다만 고단하고 척박한 삶이 보일 뿐이다. 즐거움과 기쁨 없이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윤희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딸 때문에 사는 것일 뿐 기껍게 즐길만한 자기 몫의 희망과 열정 따위는 개나 줘버린 지 오래다.

어린 시절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알렸다가 가족들은 윤희를 정신병원에 가두고 한 남성을 소개해 결혼 시켰으며 부정하고 위태롭고 문제 있는 사람으로 취급해왔다. 남편은 그런 윤희를 왠지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인간적인 연민과 가족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이루지 못한 행복을 슬퍼한다.

일본에서 날아온 첫사랑으로부터의 편지, 그리고 첫사랑에게 썼으나 부치지 못한 편지 사이에서 윤희는 처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도 놓지 않던 고된 노동의 자리를 박차고 편지의 발신지로 무작정 여행을 떠난 윤희는 사랑하던 사람을 스치듯(나에겐 이 장면이 백미였다는 TMI) 조우한다. 윤희는 이 모든 것을 주재한 딸을 통해 성장을 시작하고, 나이든 여성(윤희)과 어린 여성(딸)은 삐걱대며 각자의 첫사랑을 쓰기 시작한다. 20년 만의 해후 끝에 윤희가 사랑을 이루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윤희는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고 자신을 긍정하며 오롯이 삶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윤희를 옭아매던 가족과 사회를 삶에서 거리두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목표를 만들고 그것을 위해 도전하고 설렘을 경험한다.

영화는 동성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도 주장하지도 않았고, 둘의 사랑을 알콩달콩 맺어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람이 행복하려면 자존감이 높아져야 하고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기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여기에는 사회적으로 이해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와 환경에서는 스스로를 온전히 이해할 기회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로 깔린다.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지켜진다면야 행복은 어려운 게 아니겠지만, 이 영화를 함께 본 조카는 이렇게 대꾸했다. “자기를 안다는 게, 자기를 받아들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맞는 말이다. 자신의 삶을 재해석해줄 수 있는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는 사회 안에 사는 것이 존엄을 확인하는 것이고 자기를 아는 것일 텐데 그건 정말 귀한 일이다. 그래서 그렇게도 행복해지기가 어렵다. 결국 상호존엄한 지피지기가 해피엔딩을 만든다.

*작성: 숨_조서윤숙(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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