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한순간] 내가 투명가방끈 활동가가 될 때

활동가들은 다 제자리를 찾은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았다. 여기는 다 제 색깔을 찾아 입은 사람들만 있는 세상인 것 같았다. 글도 척척 내고, 기획도 척척 내고. 그냥 정말 아무렇게나 질문을 휙 던져도 착 받아내서 완전 그럴싸한 대답으로 돌려주는 사람들만 있었다. 그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는 나를 보면서, 사실 나는 ‘가짜 활동가’가 아닐까? 했다. 벌써 상근활동을 한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가 ‘진짜 활동가’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글 마감이 코 앞인데 ‘안녕하세요.’ 쓰고 세 시간째 한마디도 이어지지 못한 공백을 볼 때, 웹자보를 열심히 만들어서 팀 텔방에 올렸는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팀원들을 볼 때, “이거 논평 쓰실 분?” 이라는 질문에 최선을 다해 눈 안 마주치려고 노력할 때, 세상을 바꾸는 활동가라지만 바꾸고 싶은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는 나를 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투명가방끈) 활동가가 될 때가 있다.

  1. 투명가방끈을 찾는 언론 기자들에게 “이럴 때 투명가방끈의 이야기가 필요하죠.” 라는 말을 들을 때
  2. “학교에서 외로웠는데, 투명가방끈이 참 힘이 되는 것 같아요.”,“제 학교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되네요.” 같은 말을 들을 때
  3. 대학입시거부선언자들의 거부선언문과 이야기(어떻게 입시로부터 탈출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등)를 들을 때
  4. 인터뷰에서 “어떻게 대학입시거부를 하게 되셨어요?” 라는 질문을 들을 때
  5. 회의에서 나온 실무들을 욕심내서 맡아갈 때
  6. 휴일을 반납하고 카페에서 못한 일들을 깨작거리며 이걸 왜 다한다고 했지ㅠㅠ 하고 고통스러워 할 때
  7. 운영회의를 앞두고 안건을 정리하며 팀 멤버들에게 의견을 구할 때
  8. 예산안 기준대로 행사가 돌아가지 않아 초조해할 때
  9. 연대 회의 때문에 사무실 출근을 포기하고 버스에서 이동하며 멍 때릴 때
  10. 새로 후원 신청한 회원이 개인정보를 잘못 작성해서 확인하려는데 연락 안되어서 화날 때
  11. 정신 차리고 보니 일주일이, 한달이 훌쩍 지나있을 만큼 바쁘지만 그런 일상이 지루하지않아 재밌다고 느낄 때
  12. 사무실에 출근해서 다른 단체 사람들이랑 수다 떨 때

출처 : 내 트위터

사실 별 생각 안하고 최근 일상을 나열해 본거였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요즘은 저 목록에 하나씩 추가하는 맛으로 지낸다. 사실 ‘진짜’니 ‘가짜’니 다 부질없는 소리인거 알지만 그냥 가끔 내가 저 사람들과 함께 가고 있지 못한 건 아닐까, 나는 나아가는게 없나 하는 불안에 시달리곤 한다. 이상한 등급을 나누고 나의 보잘것없는 역량을 질책하는 것. 바로 몇 년 전까지 입시 경쟁에 시달리며 약간의 게으름도 정신없이 채찍질만 해온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자연스러운가 싶기도 하고.

이제는 가짜니, 진짜니 같은 것을 묻는 의미 없는 비교에서 벗어나, 내가 바꾸고 싶은게 뭔지, 나는 주변인들과 함께 잘 가고 있는지, 나는 요즘 괜찮게 지내는지를 물으며 활동하고 싶다.

 

*작성: 피아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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