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교권이 교사를 자유케 하리라?
교권과 교원지위법의 의미를 다시 묻다

5월 스승의날 즈음이나 10월 국정감사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언론을 도배하는 기사가 있습니다. 바로 ‘교권 추락’ 기사입니다. 지난 10월에도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교총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 기사들이 다수 올라왔었죠. 같은 달,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약칭 교원지위법)의 개정 시행령이 시행에 들어가 교사의 교육활동을 침해한 학생에 대해 전학, 퇴학처분까지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교사의 교육활동은 보호받아야 하고, 억울한 민원에 시달린 교사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 역시 그들의 고통에 마음이 달아오릅니다. 그럼에도 ‘교권 침해=학생의 교사 괴롭힘’이라는 등식이 확대되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찮고 위험한 구석도 많습니다.

교권추락 이미지

얼마 전 인천의 초등교사들과 ‘교권’을 다시 읽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고민하다 교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모둠별로 사례를 찾아보기를 청했습니다.

∙교사의 노동이 ‘저주’가 될 때

∙교사의 노동이 ‘모욕’이 될 때

∙교사의 노동이 ‘자유’가 될 때

∙교사의 노동이 ‘시민권’이 될 때

3개 모둠뿐이어서 아쉽게도 교사의 노동이 ‘모욕’이 되는 순간을 찾아보지는 못했는데요. 모둠에서 나온 결과물을 살펴보다 보니, 교사의 인권과 권리의 파노라마가 새롭게 펼쳐졌습니다.

 

교사의 노동, 저주와 자유 사이

교사의 노동이 저주, 자유, 시민권이 될 때

교사의 노동이 ‘저주’가 되는 순간들로는 아래와 같은 상황들이 지목되었습니다. 교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파도 방학 때 아파야 한다”던 급식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겹쳐 떠오르기도 했고, 교사가 짊어진 노동강도나 부당하고도 모욕적인 번외 노동(관리자 ‘시중’이 대체 웬말인가요?)의 심각성에 절로 마음이 저릿해지기도 했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폭탄’이라 부르는 습관은 사뭇 문제적이지만,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교사 개인의 책임에만 맡겨두는 것은 해당 교사뿐 아니라 그 학생에게도 온당한 일이라 볼 수는 없겠지요. 초등교사라고 하면 흔히 안정되고 안전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만, ‘노동인권’의 시각에서 보자면 교사의 노동에도 상당한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화장실, 식사 등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는 일에서도 여유를 얻지 못할 때

∙몸이 아파도 출근해야 할 때/정작 자녀의 행사에는 참석조차 할 수 없을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할 때(전공과 상관없이 모든 영역을 커버해야 하는 부담)

∙비정상적인 학부모의 감정 퇴출구로 소모될 때

∙‘폭탄’을 껴안아야 할 때(어려움이 있는 학생을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만 맡겨두는 상황)

∙수업 이외에 과도한 업무에 시달릴 때

∙관리자의 의전 시중에 동원될 때

 

 

반면, 교사의 노동이 ‘자유’가 되는 순간으로는 교육노동이라는 특성에 기초하여 교육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발휘하는 순간들이 많이 지목되었습니다. 교사로서 직무를 수행할 때 요청되는 교육권이란 흔히 생각하는 ‘학생통제권’, ‘학생지도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 편성권과 교재 선택권, 학생의 성장을 지원할 권리, 교사로서의 자기 성장을 추구할 권리, 직무에 있어서의 자율성 등을 아무르는 폭넓은 개념이라는 것을 교사들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자료 선택의 폭이 넓어질 때

∙학생의 변화 모습을 볼 때

∙교사로서 특기를 계발하고 성장한다고 느낄 때

∙행사나 업무 추진시 부당한 제약을 받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교사의 노동이 ‘시민권’이 될 때로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사회참여권과 정치적 권리가 행사 또는 제약될 때를 떠올렸습니다. 무엇보다 사회문제에 대해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가 아니라 ‘학생들과 나눌 때’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교사의 정치적 신념이나 생각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제시하거나 주입해서는 안되겠지만, ‘나누는 행위’, 곧 정치문해교육과 대화는 시민으로서의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소중한 교육적 나눔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근 인헌고의 ‘정치교육’을 둘러싼 논란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더 세심한 판단이 가능해질 수 있겠지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동료, 학생들과 나눌 때

∙다양한 연수를 통해 실천하고 학생들과 나눌 때

∙세금이나 기부금을 내고 그것이 잘 쓰일 때(정당 후원도 하고 싶다)

∙정치적 권리가 너무 제한되어 있음을 새삼 느낄 때 

 

교권이 교사를 자유케 하리라?

이런 질문을 가져간 이유는 ‘교권’이라는 말을 ‘학생(또는 학부모)에 대해서만’ 요구해야 할 교사의 권리 또는 권위라는 의미로만 아주 제한적으로, 때로는 폭력적으로 사용되는 관행을 되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위에서 교사들 스스로 찾아준 사례들을 보면 교사의 노동이 존엄과 자유 또는 시민성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변화는 학생 또는 학부모만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노동자도 그러해야 하듯이, 교사 역시 자신의 노동이 저주가 되지 않도록 사회적 보호를 받고 인권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에게는 교육의 자유와 시민으로서의 자유 역시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는 교사의 노동 조건, 권위적인 학교문화, 교사의 ‘교육 중립성 의무’에 대한 확장적 해석 등 관리자, 학교, 교육청과 정부 정책, 교육관계법 등의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해집니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만 해도 교사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흔히 언론에 오르내리는 교권은 왜 학생을 공격하는 언어로만 사용되고 있을 뿐일까요? 흔히 교사들이 ‘교권 실추’를 말하면서 떠올리는 장면에는 왜 이런 다양하고도 실질적인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도 ‘교권’이 교사 인권의 줄임말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교권은 이미 ‘교사의 권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봐도 교권은 ‘교사로서 지니는 권위나 권력’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법률에서 교권이라는 말이 실제로 담긴 경우가 바로 ‘교원지위법’인데, 이 법률에는 교권의 의미를 별도로 규정한 조항은 따로 없습니다. 다만 ‘교원이 학생에 대한 교육과 지도를 할 때 그 권위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하여야 한다’(제2조 교원에 대한 예우)거나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피해를 입은 교원의 치유와 교권 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제15조 교육활동 침해행위에 대한 조치)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교사의 권위’에 가깝게 교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정 집단의 권위를 법률을 통해 보장하겠다는 아주 기이한 내용을 담은 법률이 바로 교원지위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피해를 입은 교사의 치유와 ‘권리’의 회복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왜 ‘권위’가 들어선 것일까요? 신뢰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권위야 어쩔 수 없겠지만, 권위를 내세우는 순간 ‘찌질한 권력’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요?

최근에는 ‘교권’과 분리하여 ‘교육권’ 또는 ‘교육활동(권)’이라는 이름으로 교사의 권리를 주장하는 움직임도 있는데, 그 또한 ‘학생(학부모)에 대한’ 권리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정 역사교과서 개정을 통해 특정 역사관을 교사와 학생에게 주입하려 했던 사례, 4․16세월호 사건에 대한 교사들의 시국선언에 재갈을 물린 사례, 학교내 성평등 교육을 향한 혐오세력의 공격, 정치문해교육을 향한 극우세력의 공격 등을 고려하면 교사의 교육활동의 자유는 지금보다 더 확장되어 보장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례들을 ‘교권’ 또는 ‘교육권’의 문제로 해석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2017 교권침해 유형

실제 <교육통계서비스>가 분류하는 교권침해는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모욕․명혜훼손 등의 행위로만 한정되어 있는데, 이는 교원지위법 제15조가 ‘학생 또는 그 보호자 등이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하여’ 행하는 아래 행위들만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활동 침해라는 것의 의미가 좀더 확장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교사의 교육활동의 자유 또는 교육권은 학생인권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학생인권이 교사를 때리거나 모욕할 권리를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못된 짓’, 위법행위를 하고서도 그것을 권리라고 착각하는 학생도 있고, 학생의 질문 하나도 교사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교사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인권은 자주 팽팽한 긴장관계에 놓입니다. 여기서 교사의 교육권은 인권이 아닌 ‘직권’(직무상의 권리, 職權)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은 학습자의 것이고, 교사의 교육권은 학습자의 교육권 실현을 위해 요청되는 하위 권리입니다. 따라서 그 행사는 학생의 인권(학습권을 포함하여)을 보장한다는 전제 하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교육의 사명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사의 교육활동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 권리의 행사 조건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그 또한 교사의 ‘권력’을 의미하는 기존 교권 개념으로 흡수되기 쉽습니다.

결국 교사의 노동이 자유와 시민권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교권’이라는 말로 담아내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교권’에 낚이지 않으려면

생각해보면 교사의 인권과 교육권은 엄밀하게 분리되기 힘듭니다. 퇴근을 했다고 해서 교사가 아닌 것도 아니고, 학교에 있다고 해서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교사는 개인으로서 사상․양심의 자유가 있고, 자신의 가치관이 학생 개개인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수업에서 주입이 아닌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다룬다고 해도 수많은 사회문제 중 무엇을 언급하느냐도 교사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교사의 인권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지만 공적 업무를 통해 교육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는 ‘가르치는 권력에 대한 섬세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교권’ 개념에 매달려 있는 한, 이 성찰은 어려워지고 인권이 아닌 ‘권위’라는 미끼에 자꾸만 낚이게 됩니다.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필요한 건 ‘서로의 존엄을 꽃피우는 사려 깊은 상호작용’이고, 그 상호작용을 방해하는 구조적 요인을 걷어내는 일이 아닐까요? 학생이 처한 구조적 불리(disadvantage)를 걷어내는 일(그것이 학생인권을 보장하라는 주장에 담긴 요지입니다)은 교사의 인권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 사려 깊은 상호작용을 배우는 일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것, 교사의 교육권을 위협하는 다양한 장벽들을 문제삼되, 학생에 대해서는 독단적 해석을 내리지 않으려는 성찰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는 교사들이 좀더 늘어나길 바라는 요즘입니다.

* 글쓴이 : 배경내_개굴 (상임활동가)

텔레그램 채널구독

인권교육센터 들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들의 최신 소식을 가장 빠르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