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짓는사람+들] 탈코르셋을 만나고 내 세계가 넓어졌다
- 활동회원 석은지 님의 이야기입니다

다양한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 모양 피규어는 놀이장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경찰관이 필요해 놀이장 앞에서 골똘히 고민하던 아이들의 다수는 남성 역무원을 꺼냈다. 남성 역무원은 여성 경찰관과 비슷한 짙은 군청색의 제복을 입고 있지만 어쩐지 경찰관은 아닌 것 같은데, 단발머리 ‘여성’ 경찰관이라는 건 없으니까. 어쩌다가 한두 아이가 그랬다면 대수롭지 않을 법한 일인데, 대부분 아이가 갸우뚱했고 머리가 짧은 남성 역무원을 경찰관으로 선택했다. 간혹 여성 경찰관을 집어 든 아이도 고민을 하긴 매한가지였다. 얼마 전 고학년 아이는 모든 남자 인형에 경호원 역할을 주었고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고민하더니 “선생님, 남자 인형을 다 썼으니 여자 인형을 남자라고 할게요.” 말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자 경호원도 있다는 걸 말해주니, 아 정말요? 반색하던 아이는 긴 머리와 치마를 입은 여자 인형을 경호원으로 등장시켰다. 28개월 아이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오랜 기간 일을 했어도 변함없이 마주하게 되는 장면들이다.

최근 2년 사이에 7~8세 여자아이들을 자주 만날 일이 있었다. 일부를 제외한 여자아이들은 다이어트를 고민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살찌는 것에 신경 썼다. 나는 여름에도 입술이 건조해 항상 립밤을 챙기는데, 무심코 주머니에서 꺼낸 립밤을 바를 때 내 행동은 화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갑자기 눈을 반짝이던 아이는 자신도 입술에 발라 달라 했다. 아이쿠야.

높은 굽에서 ‘완전히’ 내려오다

의도하든 하지 않든, 내가 하는 행동의 많은 부분이 특히 여자아이들에게는 꾸밈에 대한 강화로 돌아간다는 걸 실감했다. 이런 고민을 이어가던 어느 날, 탈코르셋 이슈를 접했고 내 경험에 비추어 무척 호소력 있고 필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꾸밈을 멈추지 못했다. 이유는 좀 더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망을 놓지 못했으니까(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생략). 원피스는 체형을 가려주면서 적당히 신경 쓴 것처럼 보이고, 높은 굽 위에 올라가면 작은 키를 가리고 옷과 훨씬 잘 어울렸으니까. 아아아…나름 분열의(?) 시간을 좀 보내다가, 네일을 멈췄고, 통 넓은 바지와 셔츠를 입었으며, 힐에서 내려와 운동화를 신었고, 백 팩을 멨고, 선크림만 발랐다.

나는 높은 굽에서 완전히 내려오고서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남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는지 실감했다. 자전거나 자동차를 운전하게 되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확 달라지듯, 언제든 주저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을 수 있는 경험은 처음에 자전거 타기를 배웠던 경험에 비할 정도였다. 지하철이 접근 중일 때, 초록 불이 깜빡일 때 이전처럼 지레 포기하지 않고 뛰어갈 수 있다. 평소 가방에서 여벌의 옷만 더 챙기면 되니 여행을 훌쩍, 쉽게 떠날 수 있다. 매일 버스를 타지 않고 지하철역에 간다거나, 아이들과 놀이를 할 때 옷매무새를 신경 쓰지 않게 된 것, 길거리 유리에 비친 나를 확인하지 않게 된 것, 높은 신발과 불편한 옷(옷 몸살)으로 훅 떨어진 체력을 보충할 요량으로 들어가던 신발 비용이 없어진 것, 마음에 드는 통이 넓은 바지 두 종류를 각각 세 벌씩 사서 매일 뭘 입을지 고민하지 않는 것으로 내 세계는 정말 넓어졌다.

구두 여러 켤레와 운동화 한 켤레.

탈코르셋 이후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해 종량제봉투에 담아 둔 구두들. 그리고 5월부터 신고 다닌 운동화 한 켤레.

 

“선생님, 여자머리 했었잖아요?”

꾸밈중지 이후에 맞은 세계가 기대를 벗어나 새로운 것을 안겨주었기에, 머리도 짧게 잘랐다. 이전에도 머리를 짧게 자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땐 더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결정이었다면, 지금 짧은 머리는 여성성의 규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선택이었다. 이는 매우 다른 경험을 하게 했다. 짧은 머리는 달라진 복장에 딱 들어맞았고, 매주 일하러 가는 시설의 사회복지요원 대여섯의 이목을 끈 게 좀 신경 쓰였지만, 신기할 정도로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짧은 머리를 보고 아이들은 하나같이 같은 질문을 했다. 선생님, ‘여자’ 머리했었잖아요. 왜 남자머리 했어요? 라고. 여자도 무슨 머리든 할 수 있어, 라는 초라한 내 말에 아니에요, 이건 남자 머리라는 대답을 받긴 했지만. 첫날 이후에는 선생님, 남자 같아요, 남자인 줄 알았어요. 왕자 같아요. 등등의 말을 꾸준히 듣고 있는데, 고작 머리 하나로 성별이 달라지는 이 하찮음에 그냥 웃음이 났다.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며 꾸밈중지를 선택 한 여성의 다수가 교육계 종사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일터에서 만난 십 대 여학생들을 보며 꾸밈중지를 하게 됐지만, 선택 후 직접 몸으로 겪은 변화가 커서 매일 자신의 몸으로 삶을 확장하는 운동이라는 설명은 내 삶에도 딱 들어맞는다. 꾸밈에 비용을 쓰지 않게 되면서 비용을 쓰는 비율과 내용이 확연히 달라졌다. 이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 상대방이 무안할까 봐 먼저 웃는 것을 지양하는 것, 제때 말을 못하더라도 무표정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자책하는 빈도가 줄었다. 아이들 말대로 ‘여자’ 머리와 ‘여자’ 옷과 ‘여자’ 구두가 한 사람에게 끼쳤던 영향은 어디까지였을까. 비축되는 에너지만큼 내 삶에 대한 동기와 기대가 생겼다. 내가 더 큰 걸 생각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작성: 석은지(활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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