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한순간] “마치 병역거부를 자연스럽게 숨겨야 하는 신념처럼 살아온 것 같습니다”

송상윤님이 지난 9월 20일 보낸 편지 중 일부. 상윤님의 허락을 받아 올립니다.

송상윤님이 지난 9월 20일 보낸 편지 중 일부. 상윤님의 허락을 받아 올립니다.

 

저는 재판부가 1심에서 선고한 ‘양심을 확인할 수 없다’라는 말에 시원하게 반박할 만한 삶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재판부에서는 병역거부자를 거의 평생을 평화를 위해 살아오면서, 완전무결한 이를 원하더군요.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니거든요.
(중략)
그렇게 사회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동안 저는 군대에 대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비난을 종종 듣고는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병역거부를 자연스럽게 숨겨야 하는 신념처럼 살아온 것 같습니다.

“병역거부를 숨겨야 하는 신념처럼 살아왔다”는 말에 마음 한구석이 아려옵니다. 사람을 죽여서가 아니라 죽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죄인’이 된 병역거부자의 편지를 최근에 받았습니다.

작년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판결로 병역거부자들을 1년 6개월 감옥에 가두는 것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정당한 사유 없이 5일 이내에 입영하지 않은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처벌 조항이 살아있는 한 병역을 거부하는 사유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은 여전히 병역거부자 개인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너의 양심이 진지하고 순수한 것인지 증명해보라”고 묻습니다. 이 구도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징집한 입영자에 대해선 왜 총을 드느냐 설명을 해보라 국가가 묻는 절차가 없지만, 군대를 거부하는 이유는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사회와 시스템이니까요.

총쏘기 게임에 접속한 기록이 없으면 ‘완전무결한’ 양심인 걸까요? 사회운동에 수년간 열심히 참여해야만 평화주의자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걸까요? 군대의 필요성을 감히 의심도 할 수 없는 사회에서 애초에 병역거부자의 양심은 기껏해야 관용이나 동정일 뿐 권리로 인정되기 힘든 ‘패배’가 예정된 게임이란 생각이 듭니다.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병역거부를 범죄 취급한다는 국제적 부끄러움을 면하고자 일단 비범죄화 조치는 취했으나, 대체복무는 군대에 안 가는 대신 주는 벌이라 생각하기에 60개월 운운하는 말들도 나오는 것이겠죠.

예전에는 감옥을 감수하겠다는 태도가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인정받는 일종의 증거(=1년 6월 실형의 증거)처럼 작동한 셈인데요. 지금처럼 비범죄화 이후 국가가 개개인의 양심을 심사하겠다는 발상이 되려 더 판을 치는 상황에서는 “기피”를 군사주의에 대한 전복적 서사로 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게 됩니다. 군대도 감옥도 대체복무도 싫다는 말이 허무맹랑한 소리만이 아니라 군대와 병역, 전쟁준비가 정말 ‘자연’스러운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들릴 수 있으려면 어떠한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할까요.

군대에 가지 않는 것 혹은 군대 자체가 없는 상태가 기본값인 사회에 대한 상상을 해봅니다. ‘군대 가야 사람된다’는 믿음이 사라진 곳에서는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굳이 대단한 용기나 ‘양심’을 가진 사람만이 하는 것이란 통념도 약해질 것이고, 병역거부자가 피해자 혹은 영웅으로 재현되는 일도 없어지겠죠. 다른 한편으로 군대를 자연시하는 감각을 바꾸기 위해선 군사화(군사주의)에 균열을 내는 활동들 가령 무기 박람회의 실상이 무기 판매로 이득을 보는 기업과 국방 카르텔의 잔치라는 점을 알려내고 저항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좋은 노예제도가 없고 좋은 비정규직 제도가 없듯이, 좋은 무기는 없고 좋은 군대 또한 성립 불가능한 말이라는 이야기를 더 적극적으로 말할 때 ‘양심’을 걸러내겠다는 국가권력의 부당함 또한 더 드러나지 않을까요. 병역거부를 숨겨야 하는 신념처럼 살면서 관계를 살피는 촉을 발달시키는 부수적 경험이 한국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자신이 믿는 바를 숨길 필요가 없는 세상도 한번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수감된 상태로 2심 재판을 기다리는 상윤님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좋겠습니다.

*작성: 날맹(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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