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기본소득을 권리로 말한다는 것
- 자몽自夢 10월 네트워크에서 나눈 이야기 ①

 

I’m now convinced that the simplest approach will prove to be the most effective — the solution to poverty is to abolish it directly by a now widely discussed measure: the guaranteed income.

 

기본소득을 권리로 말한다는 것

사전 교육에서 나누고자 했던 주요 이야기 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빈곤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2) 커먼즈와 기본소득, 3) 공정함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를 통해 기본소득 논의에 흔히 따라오는 반론들에 대한 응답의 방향을 함께 떠올려보고자 했습니다.

첫번째 ‘빈곤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가난한 자들이 가난한 이유는 ①사회가 불공평(unjust)하기 때문이다 ②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다”라는 질문에 대한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 결과를 인용하여 참여자들과 생각을 나눴습니다. 자료에서는 “가난한 자는 게으르다”는 통념이 더 크게 나온 곳으로 미국이 보이고, 한편 유럽과 남미 국가에서는 빈곤의 원인을 불공평한 사회구조로 보는 응답이 더 높게 나옵니다. 이렇게 다른 관점이 “가난한 자들은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후속 질문에 대한 응답 방향과 상관성을 갖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빈곤에 대한 책임을 개인과 사회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둘 것인지에 따라 그 나라 복지정책을 설계할 때의 접근방식도 달라질 것입니다. ‘나라 세금 좀 먹는 게으른 사람들’이란 통념이 강력한 곳일수록 기본소득을 두고 ‘공짜 돈’을 왜 아무나에게 주냐는 말이 나오겠지요.

그림: 빈곤을 둘러싼 사회적 통념 국가별 응답 결과(세계가치관조사) 인용 슬라이드.

그림: 빈곤을 둘러싼 사회적 통념 국가별 응답 결과(세계가치관조사) 인용 슬라이드.

 

그런데 기본소득이 과연 정말 ‘공짜’일까요? 이 땅에 살아가는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몫’이자 권리로서 기본소득이 갖는 의미를 나누고자 두번째 키워드로 ‘커먼즈’를 준비해갔는데요. ‘커먼즈commons’는 사전에는 ‘평민, 서민 계급’ 정도로 나오지만, 운동 차원에서 ‘특정 개인(들)의 소유가 아닌 공유지 혹은 공동자원’의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일례로 땅은 원래 누구의 것인가 떠올려봤을 때 미국의 독립 과정에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사상가 토머스 페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살아갈 땅이 기본권으로 주어져 있지만 그 땅들은 이미 사유화되어 있어서 나누어 갖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정부가 그에 걸맞은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 『토지 정의(Agrarian Justice)』(1796, 참고).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문구로 인용되곤 하는 구절인데요. 토머스 페인은 “모든 사람에게 권리로서 속하는 자연유산을 대신하는 것”으로서 21살이 되는 모든 사람 그리고 50살이 된 모든 사람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처럼 소유/사유의 감각에 너무 익숙해진 우리들에겐 자신이 살아갈 땅이 기본권으로 주어져 있다는 말이 낯설고도 혁명적인 발상처럼 들리지만, 가령 태양이나 바람의 주인은 누구인지와 같은 질문 그리고 더 나아가 바람으로부터 얻은 전기를 판 수익을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게 바람직한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게도 합니다(관련 기사 “알래스카처럼…제주서 ‘기본소득’ 바람 불어온다”).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는 석유를 채굴하여 발생한 수입을 주민들에게 개인 단위로 분배하는 제도를 80년대 초반부터 운영해오고 있는데요, 제도가 안착된 지금은 “주민 대부분이 자신이 받는 배당을 정부에서 받는 지원금이 아니라 알래스카 주의 자연 재산에 대한 자신의 정당한 몫이라고 생각”하고 “정치인이 배당을 줄이려는 시도는 주민들의 적법한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여겨진다”고 해요.(피터 반스, 『우리의 당연한 권리, 시민배당』참고).

 

커먼즈와 기본소득

커먼즈 혹은 공유재에 대한 우리의 몫이라는 발상이 여전히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까요? 기여에 대한 보상이나 불쌍할만큼 가난해서 받는 차원이 아니라 적절한 삶의 수준에 대한 권리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자료로 이번에 새로 알게 된 문헌이 『마그나카르타 선언 –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와 올 봄 영국 노동당에 제출된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1215년에 만들어진 마그나카르타는 봉건 영주와 왕 사이의 힘겨루기 끝에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여러 조치들, ‘법의 지배’와 같은 근대 인권사상의 초석이 담긴 레퍼런스 정도로 보통 알려져 있는데요. 1217년에 선포되어 나중에는 마그나카르타에 통합된 문서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삼림헌장(the Charter of the Forest)에 대한 해석을 접하게 됐습니다.

커머너들이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것들에 대한 권리—삼림을 사용할 권리, 나름의 통치 규칙을 자기조직화할 권리, 왕의 자의적인 권력남용을 막아줄 시민 자유권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이것이 마그나카르타의 잊혀진 유산이다. (출처: “800살 된 삼림헌장”)

삼림헌장이라고 하니 처음엔 무슨 환경보호선언문 같은 건가 싶었는데요, 당시 커머너commoner들의 생계 터전인 삼림(숲보다 넓은 개념)을 왕의 소유로 만들고 커머너를 배제하는 힘에 맞서 “무슨 말이야, ‘왕의 삼림’이라니. 그건 우리 것이야. 수세기 동안 우리 것이었어!”라고 말하며 커머너들의 삼림 사용권 즉 커먼즈에 대한 권리를 천명한 것으로 여겨지는 문서입니다.

기본소득 논자인 가이 스탠딩은 영국 노동당에 제출한 기본소득 보고서(원문보기)에서 이 삼림헌장에 담긴 ‘생계자급에 대한 권리right to subsistence’를 언급하면서 이 권리는 특정 행동이나 기여 여부에 따라 부여/철회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기본소득은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을 골라내고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존엄한 삶의 수준을 누릴 수 있는 권리로서 정당화된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기본소득에 대한 반론으로 남은 키워드가 ‘공정성’인데요.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둘러싸고 ‘억울하면 (나처럼) 시험봐라’와 같은 ‘비례 원리’(시사인 기사)에 입각한 무임승차자 밀어내기/혐오 반응으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원리를 위반한 불공정한 제도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이날은 무엇을 공정함으로 볼 것인가의 기준 또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 기본소득을 ‘something for nothing’으로 생각하는 감각을 재구성하려면 ‘능력’과 ‘기여’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짚는 정도로 후다닥(-_-;;ㅋ) 사전 교육을 마무리했습니다.

*작성: 날맹(상임활동가)

“자몽自夢 10월 네트워크에서 나눈 이야기 ② – 청소년 자립지원 현장에서 떠올려본 기본소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