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살짝쿵] 청소년 자립지원 현장에서 떠올려본 기본소득
- 자몽自夢 10월 네트워크에서 나눈 이야기 ②

10월 자몽네트워크 모습입니다

 

지난 10월 ‘자몽’ 네트워크 모임은 기본소득을 주제로 열렸습니다. 자몽 사업으로 청소년들에게 월 30만원의 현금을 직접 지급해오고 있는 기관에서 지난 2년에 걸친 기본소득 사업의 의미를 정리하는 연구를 진행 중인데요, 그 연구 중 한 파트인 청소년 인터뷰의 중간 결과를 네트워크 모임에서 나누고 피드백을 참고하여 남은 연구 작업을 이어가는 컨셉으로 기획된 자리였습니다.

여러 해 자몽 네트워크에 함께 한 기관과 올해 처음 함께 한 기관들이 섞여 있는만큼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도 서로 조금씩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하여 기본소득의 개념과 문제의식을 함께 확인하는 교육 시간을 전반부에 배치하기로 했고, 청소년 인터뷰 중간 결과를 들은 뒤에는 각자 기관에서 기본소득 사업의 원리를 참고하여 시도가능한 아이디어를 함께 나누는 흐름으로 배치했습니다.

사전 교육에서 나누고자 했던 주요 이야기 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빈곤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2) 커먼즈와 기본소득, 3) 공정함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를 통해 기본소득 논의에 흔히 따라오는 반론들에 대한 응답의 방향을 함께 떠올려보고자 했습니다. (사전 교육 내용 더보기)

예측가능한 소득과 삶의 안정성

사전교육에 이어서는 기본소득을 경험한 청소년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꼽아본 의미를 몽실팀 활동을 함께 하기도 했던 호연 님이 나눠주었습니다. 이 기관의 기본소득 사업은 기본소득의 정의(보기) 중 정치공동체가 지급한다는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기준을 모두 충족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즉, 당사자 및 부양자 자산 조사 없이, 노동이나 교육 의무 없이, 부양자가 아닌 개인에게 직접,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을 자몽 사업으로 2년간 진행했습니다.

호연 님은 여는 이야기 중에 이 기관의 사업이 “어쩌면 세계 최초의 청소년 기본소득 파일럿 아닐까” 말했는데요,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말하는 논지들에서도 청소년의 독자성, 경제적 자율성에 주목한 경우는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앞서 나온 알래스카의 석유기금 정도만 연령 무관 모두+개인에게 지급하는 사례로 보이고, 스위스에서 국민투표로 제안됐던 기본소득안처럼 청소년에겐 비청소년 지급분의 절반이 지급되거나 아예 지급대상에서 청소년이 고려되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이면에는 청소년을 부양자의 보호 아래에 묶어두는 익숙한 감각 그리고 미성숙하기에 돈을 허투루 쓸 것이라는 불신이 자리하고요.

최종 연구 결과물을 통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고(여기서 다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ㅎㅎ;) 맛보기 느낌으로 호연 님의 발표를 공유하면, 이날 발제 중 기본소득 지급 초기에 “우리가 실험쥐인가”와 같은 청소년의 반응과 그에 대한 호연 님의 해석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냥 주는 돈이 있겠어요? 뭔가 있겠죠”라는 청소년들의 반응은 결국 ‘공공성에 대한 불신과 경험없음’ 때문이라는 것 그렇기에 기본소득을 지급받아온 경험을 통해 그 불신 중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유지되고 있는지 그리고 기본소득 경험이 공동체에서의 소속감과 상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는 언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월 1일 지급이 낳은 예측가능성과 삶의 안정성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요. 돈을 빌리고 갚는 관계에서 2일에는 갚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예측가능한 소득이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의미이고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떠올려본 순간이었습니다.

 

모둠토론 결과물 모습입니다.

 

우리 기관에 기본소득의 원리를 적용해본다면?

발표와 질의응답을 마친 뒤 마지막 시간으로 다음의 질문을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했는데요.

“우리 기관의 사업 중 기본소득의 원리를 도입해 변형시킬 여지가 있는 사업은? 시도할 경우 예상되는 변화와 우려되는 점은?” (기관 분위기, 청소년과 실무자 관계 등 측면에서)

기관에 따라 현금지급이라는 구체적 사업을 도입하는 차원으로 생각해서 예산 마련이나 사업의 성과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 현실적 고민으로 넘어간 기관이 있었는가 하면 청소년 기본소득이라고 했을 때 지원하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맺어갈 것인지 차원에서 고민을 이어간 곳도 있었습니다.  아래는 각자의 청소년 기관에서 기본소득을 떠올렸을 때 떠올린 우려지점으로 나온 이야기입니다.

“정해진 금액 안에서만 살고 그 이외에는 바깥활동을 아예 안 해서, 오히려 구직활동 저해요인이 되고 오히려 니트(NEAT)가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돈을 받고 싶어서 오는 이들도 있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오는 이들도 있다. 온도 차이가 있다. 이때 청소년들이 돈이라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왔을 때 우리 기관과 사업의 목표는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고민이 된다.”

‘칩거’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본소득이 생기면 다들 일을 안 할 것”이란 사회적 통념의 청소년 버전인 셈인데요. 실은 이번 중간결과를 발표한 청소년 기관에서 이미 작년 말에 기본소득 사업 1년차 결과로 “힘든 일자리를 줄이고 저축을 시작했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더 찾아서 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고하기도 했고, 핀란드 정부가 시행한 기본소득 파일럿 사례에서처럼 임금노동 시간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결과가 입증된 부분이기도 하죠. 일을 그만둬도 될만큼 충분한 금액이 지급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나는 돈을 받아도 일을 하겠지만 남들은 안 할 것이다”라는 사회적 감각이 여전히 강력한 것은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경험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반대로, 내가 특정 조건을 통과하지 않아도, 어디에 쓰든지 의심받거나 간섭받지 않는 현금을 지급 받는 신뢰를 경험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신뢰와 연대 가능성 또한 싹틀 수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한편, 청소년 지원 기관의 성격에 따라 현금지급의 의미 또한 다르게 구성될 수 있을텐데요. 가령 생활을 함께 하는 기관에서 기존 사업 예산 중 용처를 정하지 않고 청소년이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현금 지급을 모색해보는 것과 교육 기관에서 청소년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행위의 맥락과 목표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 기관으로서 청소년들이 ‘안전한 실패의 경험 속에 자립의 근력’을 갖춰가길 기대하는 곳에서 기본소득 원리를 고민한다는 것은 ‘용처를 제한하지 현금’이란 수단을 통해 청소년들의 주체성과 자유를 촉진/확대하기 위함이지 생계를 직접 지원한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현금지급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이 만나는 청소년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기 기관의 지향을 떠올리며 현금을 지급하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면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청소년 분들이 하고 싶은 것, 자유로운 내용으로 활동을 정해서 진행하고 활동비를 받는 별별프로젝트가 있다. 현금 지급이란 점에서 기본소득이랑 비슷한건가? 생각을 했는데요. 그런데 지급증을 쓸 때 활동 내용이 항상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를 들어 5회기를 기획했는데 3회기만 했다면 3회기 분에 한해서만 지급이 된다. 계속 걸리는 부분이다. 어떻게 조건 없이, 가시적인 활동 내역이 없어도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현물에서 현금 지급으로 바꿨을 때 예상되는 변화를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우리가 기본적으로 위생이나 약 같은 것들 제공하는 과정에서 이런 것도 말해도 되는지 이런 것도 신청해도 되는지 이분들이 어려워하는… 문턱들이 있었던 거 같다. 우리의 마음과는 다르게 신청하는 사람의 입장이 다른 거다. 머뭇머뭇거리거나 약간의 벽 같은게 있는? 현금으로 지급하면 자기가 원하는 걸 살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향이 있을거고 반찬도 있을거고. 내가 사는 것보다 그 사람이 직접 사는 게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지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과연 우리 기관의 청소년들이 기본소득을 준다고 했을 때 감흥이 있을까?” 고민을 나눠주셨던 분의 이야기로 마칠까 해요. 이 분은 본인 기관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조건이라서 그런 생각이 드셨다고 해요. 두 가지가 떠올랐는데요. 하나는 “이건희 손자에게도 기본소득을 줘야 하냐”는 흔한 반론과 연결한 이야기입니다. 부모가 부자라도 자녀는 빈곤할 수 있다, 특히 부모가 기대하는 규범을 수행하지 않는/못하는 청소년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내 말 안 들을거면 (내) 집에서 나가”라는 협박을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종속적 위치성을 고려할 때 청소년 모두에게 지급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모두에게 준다’에 내포된 급진성인데요. 선별하여 시혜처럼 지급한 뒤 받는 이로 하여금 복지에 감사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순종하도록 만드는 지배계급의 통치 전략을 깨부수는 것, ‘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내 권리 내놔라’ 말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진 않을까 하는 고민과 기대를 조심스레 떠올려봅니다.

2년 간의 기본소득 사업을 통해 청소년과 이들을 지원하는 비청 활동가 그리고 이 공동체는 무엇을 경험했고 어떤 의미를 발견했을지, 내년 2월 연구발표회가 기대가 됩니다. 연구발표회 구체적 일정은 이후 다시 공유하도록 할게요.

*작성: 날맹(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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